지난 6월 22일 현재관 대강당에서 퓨전 판타지 웹소설 아이박슨 작가님의 특강이 있었다. 웹소설이 대중화된 후 가장 각광 받는 장르 중 하나인 퓨전 판타지. <무공으로 레벨업하는 마왕님>,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 등으로 활동하며 주목받는 퓨전 판타지 웹소설 작가인 아이박슨 작가님. 학생들과 함께한 Q&A를 통해 최근 퓨전 판타지 웹소설 트렌드와 웹소설 작가 팁을 들어보자.

Q. 작가님은 어떻게 데뷔하셨나요? 혹 작가님도 신인 때 시행착오를 겪으셨나요?
A. 18살 때 대여점에서 소설을 읽어보다가 웹소설 플랫폼 ‘조아라’를 알게 되면서였습니다. 당시 <레이센>이라는 작품을 필두로 게임판타지가 유행하던 시기여서 게임판타지 장르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연재를 꾸준히 하면서 투데이베스트에 들었고, 나중엔 출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멋모르고 쓸 때는 즐거웠지만 본격적인 상업 작가로서 글을 쓰게 되자 독자의 니즈를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현재까지 6질의 작품을 썼는데, 제 스타일을 정립하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건 강점과 단점을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트렌디한 글을 써보겠다고 노력했다가 막상 그 장르와 맞지 않아서 고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아, 난 캐릭터를 살리는 것보다 전개에서 속도를 빼는 것과 주인공의 능력 빌드업이 잘 어울리는구나.’라는 결론을 냈고 현재 제게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을 정립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장르에 대한 도전, 그리고 나에 대한 분석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작품 속 주인공의 도덕적 수위는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여질까요? 예를 들어 청부살인이나 프락치를 통한 사보타주 등이 벌어지는 세계관에서 주인공이 살인을 한다면,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는지요?
A. 도덕적 선보다는 주인공의 설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웹소설에서 남성향 대세를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회귀나 빙의는 어차피 멸망하면 다 죽을 사람들이니 재능 있는 사람을 선별하며 나머지 사람을 살인하는데 도덕적인 잣대가 덜 적용됩니다. 환생의 경우에도 원래 주인공이 잔인한 성정을 지닌 전생이라면 마찬가지로 살인 같은 부분을 독자들이 덜 자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만 수위가 너무 높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공감대를 사기가 어렵겠죠.
Q. 작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에피소드는 어떻게 짜시는지, 트리트먼트는 쓰시는지요?
A. 1~5화가 중요합니다. 특히 1화는 못해도 며칠은 붙들고 씁니다. 1화에는 주인공의 성격과 작품의 성질, 그리고 대략적인 설정을 녹여내야 하는데 단순히 설명문으로 넣어버리면 독자들 보기에 재미가 없어서 연출과 대사 설명을 적절하게 배치하려고 많이 고민하는 편입니다.
작품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하루 1화는 꾸준히 쓰는 편인데 시놉시스를 하루에서 이틀 정도 투자해서 10~15화 단위로 짭니다.
Q. 처음 작가가 되었을 때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나요?
A. ‘처음’이라는 의미를 여러 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상업 작가로서 처음이라면 작업 루틴과 시놉시스 짜는 습관을 만드는 게 어려웠고, 한 작품을 시작할 때 ‘처음’은 아무래도 1화를 쓸 때가 제일 어렵습니다.

Q. 요즘 퓨전 판타지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A. 퓨전 판타지의 장르를 확장해 빙의물까지 적용하면, 현재도 다크판타지 류가 ‘문피아’와 ‘네이버시리즈’에서 강세입니다.
Q. 퓨전 판타지 장르만의 핵심 코드나 클리셰가 있을까요? 그리고 효율적인 자료조사 방법은 무엇이 있나요?
A. 퓨전 판타지의 장르를 어느 쪽으로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무협을 섞었다면 주인공의 무공 성취가 핵심이 되고, 환생이라면 복수가 핵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핵심 코드는 주인공이 움직이는 ‘동기’인데, 그 동기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글의 전개가 ‘사이다가 되냐, 고구마가 되냐’ 결정됩니다.
효율적인 자료조사라면…… 다들 아시는 ‘킹무위키’? 라떼 시절 이야기이긴 하지만 제가 10대 때에는 인터넷 자료가 굉장히 한정적이라 신화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가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검색 조금만 해도 여러 자료가 나와서 참 좋습니다.
Q. 판타지 세계관을 쓸 때 파워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는 게 좋을까요?
A. 파워 밸런스는 주인공 성장 속도에 맞춰 가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 <드래곤볼> 식 계단 밸런스라고 인터넷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방식이 작가도, 독자도 몰입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Q. 퓨전 판타지를 구상할 때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으시는지가 궁금합니다.
A. 다른 작품이나 애니메이션, 혹은 드라마에서 캐릭터나 배경 등을 따오곤 합니다. 혹은 신화나 전설을 변형해서 적용하기도 합니다.
Q. 웹소설에서 주인공 외에 필수 조연의 유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조력자 포지션. 주인공이 손댈 필요 없는 잡무나 의뢰, 혹은 자산관리 등 디테일하게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 대해 힘이 되어주는 조력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주인공과 같이 성장해나가는 동료도 좋지만, 웹소설 특성상 파워 인플레이션이 빈번하게 일어나서 뒤처지는 조연이 나올 수 있기에 호흡에 따라 응원 포지션이나 전개에서 자연스럽게 배제하는 상황이 간간이 벌어지는데, 주인공과 포지션이 겹치지 않는 조연은 꾸준히 스토리에 등장할 수 있습니다.
Q. 대중에게 오리지널 판타지는 멀어진 지 오래고, 헌터물이나 이세계물이 대세입니다. 오리지널 판타지를 어떻게 대중적으로 만들지 고민입니다.
A. 상업 작가로서 말씀드리면, 오리지널 판타지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습니다. ‘문피아’ 같은 플랫폼에서는 오리지널 판타지가 무료 연재에서 의외로 성적이 잘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료 연재로 넘어가면 바로 전환율에서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봤기에, 상업적인 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판타지 설정을 어떻게 짜면 좋을까요?
A. 퓨전, 혹은 오리지널 판타지에도 기본적인 틀은 있어서 주인공의 특성이나 특별한 부분 먼저 설정하고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설정이, 아예 나만의 특별한 세계관이라고 한다면 그 부분은 저도 어떻게 말하기가 어렵네요!
Q. 판타지 특유의 현실과 다른 설정과 배경을 독자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주기가 참 어려운데요.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A. 작품만의 독창적인 설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어지간한 판타지는 기본 설정을 어느 정도는 공유한다고 봅니다. (ex. 오러/마법/소드 마스터/서클 단위/왕국이나 제국/오크나 엘프 같은 이종족 설정) 그 부분은 독자들이 이해한다는 걸 전제로, 작품 내 독창적인 설정에 대해서는 주인공의 시선에서 하나씩 설명해주는 느낌으로 확장해나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주인공을 먼저 조형하고 주변 환경을 조명해주면서 서서히 설명을 확장하는 식으로 짚어줍니다. 처음부터 설정만 늘어놓으면 작품 몰입에 방해가 되니 주인공 조형에 힘을 쓰는 게 좋습니다.
Q. 무협과 판타지, 양쪽 독자를 모두 잡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A. 플랫폼마다 성향이 다르기에 이 부분은 상황에 맞게 접근해야 합니다. 단적으로 ‘문피아’는 양쪽 장르의 독자를 모두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만, ‘카카오페이지’는 퓨전 무협에 상대적으로 관대해서 두 장르를 혼용하면 시너지 효과가 매우 큽니다.

Q. 슬럼프가 올 때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A. 너무 정석적인 말이지만 타인의 글을 많이 읽어봅니다. 인기 작품을 읽다 보면 제가 쓰는 글과 흡사한 상황을 종종 발견할 수 있고, 그 작가님이 해당 에피소드를 어떻게 풀었나 보며 방향을 잡아봅니다.
Q. 오랫동안 작업하실 수 있는 비법이 있으신가요? 연재할 때 말고도 따로 글 쓰는 것을 연습하는지요? 그리고 작가님도 ‘내 글 구려’병을 겪을 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글 연습은 따로 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쓰려면 콘티(시놉시스) 작성 습관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대충 감으로 쓰고 연재하다 보면 시간에 쫓겨 글을 올리게 되는데, 나중에 ‘아, 이건 이렇게 전개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후회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니까요.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휴재를 하게 되고 집필 컨디션에도 악영향이 생깁니다. 그래서 글의 방향성을 정하는 콘티를 짧게라도 작성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내 글 구려’병으로 대표되는 자기 글에 자신이 없을 때. 저는 퇴고용으로 만든 ‘문피아’ 비공개 글이나 텍스트 파일을 휴대전화로 옮겨 뷰어로 전환해 타인의 글처럼 봅니다. 내가 쓴 글이 아닌 남의 글을 보듯,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글의 아쉬운 부분이 더 잘 보이기도 하고 또 재미도 느껴져서 자신감도 얻게 됩니다.
정리 김선민·박세림(웹소설창작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