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예술인의 흔적 >
내가 박세림 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장르 연구 로맨스’ 강의였다. 3월이었지만 오락가락한 날씨에 다들 반 팔과 긴 팔을 번갈아 입던 어느 날이었다. 교수님이 처음으로 반팔 티에 조끼를 입고 등장하셨는데, 눈에 띄는 문신이 여러 개 있었다. 태양과 달의 문양, 눈물을 흘리는 사람과 고양이 발바닥 안의 나뭇잎 등 생각보다 색깔이 가득한 문신이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가득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홀린 듯이 팔의 방향에 따라 시선을 움직였고, 결국 그날의 수업은 교수님의 팔만 열심히 바라보다가 끝나버렸다. 한참 문신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애써 묻어둔 채 조심스럽게 다가가 여쭤보았다. 잠시 동공 지진이 일어나셨던 교수님은, 급하게 강의실 불을 끄고 몸을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내 문신이 보여요?”
“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교수님께서 너무 긴장감 있게 말씀하셔서 괜히 나도 몸을 숙여버렸다.
교수님은 내 팔을 잡고 휘적휘적하며 이곳저곳을 살펴보시더니,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물어보셨다.
“너 아직 제대로 된 작품 한 번도 못 써봤구나?”
어쩌다 팩폭을 맞은 나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가늠도 잡히지 않은 채로 폭탄을 맞은 나는 멍해지기 시작했고, 교수님은 손목시계를 보시더니 저녁 7시에 연구실에서 잠시 보자는 말과 함께 갑자기 사라지셨다. 내가 보면 안 되는 문신이었을까. 아니면 나에게만 보이는 특별한 문신인 걸까. 온갖 판타지 소설을 쓰며 저녁 7시에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온 순간,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때? 내 예술의 흔적들.”
항상 빈티지한 옷만 가득 입으셨던 교수님이 크롭티를 입고 계셨다…!
세상에.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교수님의 스타일이었다.
“우와…”
하지만 크롭티를 입고 있으심으로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문신들이 가득했다. 보지 못한 돋보기 문신도 있었고,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아이의 문신도 있었다.
“이 문신들은 내 인생과 관련된 작품을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조금씩 선명해졌어.”
교수님은 문신을 조심스럽게 문지르며 말씀하셨다.
“이상하게 나와 관련된 작품들이 나올 때만 이 문신들이 나오고, 관련이 없으면 아예 나타나질 않더라고.”
“그렇군요….”
“나 카카오 페이지에서 연재했던 작품 알지? 그 작품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드러나다가 완결 내니까 이런 문양이 나왔더라고.”
“그럼 각 문신이 작품을 대표하는 상징 마크…. 같은 건가요?”
“정확해.”
고양이 발바닥 안에 그려진 나뭇잎은 교수님의 고양이가 캣닙을 가지고 놀다가 떠오른 웹툰 시나리오를 상징하는 문신이었고, 태양과 달의 문신은 교수님의 연애 시절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시나리오의 상징이었다.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은 문신들을 소개받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그런 내 모습을 보던 교수님은 설명을 멈추고 말씀하셨다.
“이 문신은 진정한 예술인들밖에 보이지 않아.”
“그게 무슨 뜻인가요?”
“너도 곧 나처럼 너의 인생을 담은 작품이 완성될 거라는 신호야. 지금 쓰고 있는 작품 있어?”
“어…. 네….”
소름이 돋았다. 마침 오로라와 관련된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던 나는 주섬주섬 태블릿을 꺼내어 원고를 보여드렸다. 쓱쓱 살펴보시던 교수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이 여주인공이 너와 닮은 것 같은데?”
“맞아요. 저도 여주인공처럼 오로라를 동경하거든요. 오로라를 직접 보는 것도 꿈이고.”
“내 예상대로라면, 이 작품이 완성되면, 너의 몸 어딘가에 오로라가 그려질 거야.”
“뭐라고요?”
“너만의 진정한 예술을 펼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 나도 잘 알아. 특히 자신의 인생을 담아낸 예술은 더욱 힘들지. 내가 쓴 작품이 세상 밖으로 나와 후에 자기소개서에 한 줄로 표기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난 이렇게 내 몸 안에 표식으로 남기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왠지 더 자랑스럽달까.”
“그…. 그러면 지금 이 흔적들이 자신만의 진정한 예술을 한 사람들에게만 보인다는 거예요?”
“맞아! 일반인 눈에는 보이지 않을 흔적이지만,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보이는 진정한 흔적. 축하해 학생.”
다음날, 나는 다른 수업에서도 진정한 예술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전혜정 교수님의 손가락에 보이는 별자리와 홍석인 교수님의 목에 보이는 로켓이 진정한 예술인의 흔적이었다. 전혀 보이지 않았던 문신들이 조금씩 보이자 신기했다. 생각보다 많은 교수님이 각자만의 정체성을 가진 문신들을 품고 계셨고, 나도 빨리 내 예술을 완성 시켜 교수님과 같은 멋진 흔적을 가지고 싶었다.
“와아….”
교수님의 비밀을 알게 된 지 정확히 한 달 뒤, 원고를 완성한 나는 쇄골 쪽에 빛나는 오로라 한 조각을 남기게 되었다. 그날은 특별히 입어보지도 않았던 오픈숄더를 입고 학교에 가게 되었고, 박세림 교수님이 나의 오로라 문신을 발견하시자,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엄지를 올려주셨다. 그렇게 웃으며 교수님과 눈을 마주한 순간, 동기 중 한 명이 놀라며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너 문신했어?!”
*이 글은 ‘장르적 후기’로, 모두 픽션입니다.
*[웹소설창작전공 재학생 후기] 마지막 회입니다.
*학생의 후기 원본이며, 오탈자만 수정했습니다.
(대표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