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기계 작가가 청강대 만화콘텐츠스쿨 웹소설창작전공 학생들과 함께 할 독서 모임을 준비하면서 보낸 글

안녕하세요. 저는 웹소설작가 ‘글쓰는기계’입니다.

제가 아직 작가 지망생이었을 때 저는 몇몇 웹소설 작가들의 비밀결사에 들어갈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몇 가지 시험을 운 좋게 통과한 끝에 스승님에게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손에 넣었죠.

스승님께서는 흰 눈썹에 흰 수염을 기르시고 언제나 생활한복을 입고 한 손에는 퉁소,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다니시는 분이었습니다. 작법에 관해서는 적수가 없으셨기에, 술자리에서 술잔을 던지고 고함을 지르면 다른 작가들은 그저 쩔쩔매며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작법에 관해서는 지존에 가까운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런 스승님에게 작법에 관한 비인부전(非人不傳)의 비결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쓰면 너무 길어지기에 넘어갑니다만 정말로 긴 고난의 나날들이었습니다. 비록 스승님께서는 그 실력을 질투한 타 출판사 소속 검객들에게 암살당하셨지만 저는 언제나 스승님께 받은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고, 가르침을 전수할 다음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물론 거짓말입니다. 굳이 이런 거짓말로 시작한 이유는 독서 모임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정말로 별것 없기 때문입니다. 청강대 쪽에서 거절하기엔 너무나 많은 돈을 줘서도 아니고, 웹소설 업계에 대한 사명감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냥 제가 요즘 작법에 관해 공부를 하고 있어서입니다. 저는 최근에 웹소설 작법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저 자신이 이러한 작법에 관한 연구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작법에 관해 연구를 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다른 사람들을 붙잡아 놓고 떠들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한 작법의 연구 방법 중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웹소설 작법에 대해 이런 방법으로 접근하는 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주기적으로 모일 수 있어야 합니다. 웹소설의 트렌드는 변화가 빠르고 휘발성이 강합니다. 일 년만 지나도 몇몇 화제는 이야기하기 애매한 것들이 됩니다. 꾸준히 이야기하고 정리하지 않는다면 기억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동시에 듣는 사람들이 제각각 어느 정도 웹소설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제각각’입니다. 웹소설에 인생을 바칠 정도의 열정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누군가는 수십 작품을 읽고 당장 직접 쓰고 싶은 열망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웹소설의 이름만 들어봤지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다름이 제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이런 난항들을 뚫고 모임을 조직할 수 있는 곳은 한국을 지배하는 작가들의 비밀결사나 혹은 대학교 정도일 겁니다. 청강대 측에 감사드립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채셨겠지만 저는 아까부터 스스로한테 이 독서 모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제가 하려는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올 사람의 절반은 줄 것 같지만 저도 자신이 없는 만큼 미리 못을 박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르치는 데에 서투릅니다. 아마 참가하게 될 여러분들도 곧 알게 될 겁니다.

최근 읽은 논문 중 재밌는 논문이 있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주제 전문성보다 교육 전문성이 효과에 훨씬 더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논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제가 주도할 독서 모임의 운명은 상당히 암울한 편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희망은 있습니다. 먼저 듣는 학생 여러분들의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서 제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한 명 정도는 그러지 않을까 하는 양심 없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비슷하지만 조금 더 가능성이 희박한 희망 중에는 제가 속성으로 교수님들께 도움을 받아 숨겨진 교육 능력을 각성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제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신 청강대 측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게 됩니다.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임에 참가할 분들 또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마 위의 긴 문단을 다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 마지막 세 줄로 요약을 해드리겠습니다.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걸 기대하진 않습니다. 웹소설에 대한 지식도 많을 필요는 없고요. 하지만 아마 참가하게 되면 제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될 테니, 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할 각오가 되어 있는 분들이 오셨으면 합니다.

웹소설 작가로서 몇 년 정도 활발하게 활동하신 분들은 필연적으로 육체의 질병과 지망생의 질문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둘 다 해결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성공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웹소설을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건 왜 어려운 걸까요? 사실 이건 웹소설에 한정된 질문이 아닙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의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숫자와 소설가로서 활동하는 숫자를 비교한다면 정말로 낮은 확률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고 더 길고 복잡하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결국 웹소설(혹은 소설)이라는 것이 철저히 개인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책을 수천 권 읽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영화를 수천 편 봤을 것이고, 누군가는 희극에, 누군가는 비극에 관심이 있을 겁니다.

이렇듯 가진 감성과 관심사들이 제각각인 만큼 어떠한 교육을 통해 일괄적인 결과가 나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오죽하면 작가들 사이에 이런 농담이 돌겠습니까. ‘누군가에게 소설을 가르쳐서 성공시키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애초에 성공할 놈을 붙잡는 것. 네가 잘 가르치든, 못 가르치든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뼈가 있는 농담입니다.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입장에서 몇 번이고 느끼기도 합니다. 본격적인 웹소설 창작으로 들어갈 경우 그 안의 작법이나 구성은 제가 조언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지만, 그걸 채워야 할 내용과 감성들은 순전히 개인적인 내면의 영역에 가까워서 가르치기 어렵습니다. 그건 저한테 들을 게 아니라 스스로 채워왔어야 하는 영역입니다. 지금부터 써야 하는데 뒤늦게 채우면 너무 늦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고민의 끝은 결국 일반적인 조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경험해라. 그런 점에서 저는 대학이 무엇보다 스스로 내면을 확장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하는 모든 경험이 도움이 되니 말입니다.

장르에 대한 강의는 그중에서도 특히 그렇습니다. 제가 다니던 곳에는 장르론에 대한 강의가 많지 않았고, 덕분에 얼마 되지 않는 강의를 듣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것들을 간신히 챙겨 듣고 남는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 것들이 제게 커다란 도움이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르에 대한 강의들이 이렇게 있다는 건 제겐 부러울 정도의 기회처럼 느껴집니다. 쓰고 보니 좀 재수가 없긴 합니다. 저는 졸업했으니 말입니다. 저도 전공은 욕하면서 들었기에 여러분들도 아마 이걸 읽으면서 절 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고민하십시오. 글을 쓰는 건 좋지만 서두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여러분들이 글을 쓰실 때, 여러분들이 쓰고 있는 것 중의 일부분은 여기 대학교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느끼시게 되길 빕니다. 그리고 그 일부분의 일부분 중에 제가 했던 이야기들이 조금이라도 들어가게 된다면 정말로 기쁘겠습니다.(*)

글쓰는기계 작가2014년 ‘모험가로서 살아가는 법’을 연재하며 웹소설 작가로 데뷔하였으며, 현재는 문피아, 카카오 페이지, 조아라에서 여러 웹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쓰는 듯한 다작(多作)이 특징이다.
 
대표작 ‘모험가로서 살아가는 법’, ‘리턴 겜블러’, ‘보디가드 김도진’, ‘이계의 후예’, ‘나는 될 놈이다’, ‘칼끝이 천 번 흔들려야 고수가 된다’, ‘지옥에서 돌아온 성좌’, ‘방랑 기사로 살아가는 법’,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