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MC PEOPLE] 작가에게 소중하지 않은 경험은 없다 – 박세림 웹소설 작가

그동안 웹소설PD로서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협업해왔다. 당연히 즐거운 혹은 괴로운 경험도 있었는데 박세림 작가와의 작업은 단연 첫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유쾌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런 작가님도 있었어?!” 박세림 작가는 이른바 ‘성덕’이면서도 균형 있는 현실 감각을 갖추고 있고, 문제의식과 작가 정신이 뚜렷하면서도 소통과 협업 능력이 뛰어나다. 물론 필력은 기본이다. 카카오페이지에 연재 중인 <1970, 인숙>의 1화만 봐도 그 내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가장 큰 장점은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는 점이다. 나는 우리 전공 학생들이 대중문학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여러 소양과 ‘마음’이 무엇인가를 박세림 작가를 보며 느끼기를 바랐다. 그 희망은 올 1학기부터 현실이 되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의 얼굴을 만나보는 ‘CKMC PEOPLE’!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으로 웹소설창작전공에 출강 중인 박세림 작가를 소개한다.

*인터뷰·정리 : 조희정(만화콘텐츠스쿨 웹소설창작전공 교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창작전공에 출강 중인 박세림 작가 Ⓒ박세림

<월간 CKMC> 독자들에게 인사부터 부탁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박세림입니다. 웹소설, 웹툰 스토리, 시나리오로 9년여째 작가 생활하고 있습니다. 사실 작가보다는 활자 노동자 겸 마감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할 때가 더 많습니다.

활자 노동자, 마감 노동자… 정말 와닿는 표현입니다. 교수님께 ‘이야기’란 무엇인가요? ‘이야기 작가’로 데뷔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인간의 욕망과 욕망이 부딪치는 것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장르는 그 욕망의 수위와 색채를 보여줄 수 있는 도구라 생각하고요.

저는 드라마 엑스파일과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영상물 ‘덕후’였습니다. 글 쓰는 재주는 있었지만,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게 많은 데 굳이 나까지 쓸 필요가 있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회사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못 해 먹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스물아홉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한 달간 준비한 원고가 운 좋게 2012년 콘텐츠진흥원 스토리공모대전에 당선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최근에 집필하고 계신 작품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최근 카카오페이지에서 웹소설 <오늘, 밀수범 잡으러 갑니다>를 연재를 끝냈습니다. 신입 여자 세관원이 가상의 해안 도시 해산을 배경으로 밀수범을 잡으며 성장해 가는 현대판타지 전문직 수사물입니다.

픽션과 논픽션의 접목이네요. 우리 전공에서도 요즘 해당 장르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실화 모티프 웹소설이나 전문직물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픽션 사이에 숨어있는 실화나 실존 인물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실화 모티프 웹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로서도 픽션 사이에 실화를 숨겨놓거나, 실화 소재를 픽션으로 재창조하는 재미가 있고요.

전문직물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면서 어려워하는 분야입니다. 제가 겪었던 회사생활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직업의 전문성은 베낄수록 어설퍼지니까요. 그래서 저는 직업윤리에 집중합니다. 그 직업의 직업윤리를 이해하면, 주인공의 방향성과 대척점에 있는 빌런의 색깔도 분명해집니다.

직업윤리 부분은 비단 전문직물뿐 아니라, 다른 장르를 쓸 때도 캐릭터 구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장르연구 I-로맨스> 수업 때도 캐릭터 구축이 힘들면 해당 캐릭터의 직업을 파고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1-01화에서 신입 인턴 의사인 주인공 그레이는 이런 대사를 합니다. “그 환자 진짜 짜증 나. 내가 의사만 아니면 안락사시켜 버릴 텐데.” 의사라는 직업윤리에 명백히 어긋나는 대사죠. 주인공의 성격과 앞으로의 성장 방향을 직접 보여주는 대사기도 합니다. 직업윤리에 집중하라는 뜻은 이런 겁니다.

그러나 이때 실화나 직업은 소재로써만 사용해선 안 됩니다. 강의 때 같은 이야기를 한 바 있는데, 인간은 캐릭터가 아니며 다층적이며 감정이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인간의 도구이지, 인간이 예술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됩니다. 실화나 실존 인물을 소재로 창작할 때 이걸 잊으면, 작업물은 창작자의 비대한 자의식을 뽐내는 도구로 전락하죠. 그럴 때 사고가 일어나고요. 최근 몇 년 새 문학계에 있었던 (실화를 동의와 가감 없이 노출해 실제 인물에게 피해를 준) 일련의 이슈처럼요.

나이 많은 개 경이 씨와 비교적 젊은 고양이 미선이(턱시도), 포뇨(삼색), 너굴이(치즈)의 수발을 들고 있습니다. Ⓒ박세림

전업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다가 청강대로 출강을 하고 계시는데요, 강의하시기 전 청강대 이미지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엄청난 내공의 스승들과 무시무시한 덕력을 갖춘 제자들의 학교’라는 소문만 들었습니다. 제가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경력보다 인맥이랄 게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청강대 만화콘텐츠스쿨 학생들 수준이 높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들어왔습니다. 거기에 같이 일했던 능력 있는 작가님, PD님이 교수님으로 계시는 곳이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심)

한 학기 동안 만나셨던 웹소설창작전공 학생들은 어떠셨나요?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학구적이고 열의에 차 있어요. 자기가 뭘 공부하는지 뚜렷이 알고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저의 20대 초중반은 아무리 좋게 봐도 똥오줌 못 가렸는데, 학생들 대부분 목표의식이 뚜렷하더라고요. 덕분에 수업할 맛이 납니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좋아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교수님 수업이 궁금합니다.

1학기에는 <문장과 어휘표현 I>과 <장르연구 I-로맨스> 수업을 했습니다.

1학년 대상으로 한 <문장과 어휘표현 I>에서는 기본 문장력과 어휘를 위한 수업을 했습니다. 학기 초 학생들은 고등학교 국어 수업처럼 시험 볼까 봐 걱정하더라고요. 당연히 그러진 않고, 기존의 유명 웹소설이나 영화 장면을 각색하거나 영화 속에서 소재를 찾아 기사문을 쓰거나 하는 식으로 작문 숙제가 많았습니다. 창작이 아닌 각색이라 학생들 부담은 덜하면서 가지고 있는 문장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는데, 어느 정도는 이룬 듯합니다. 학기 말로 갈수록 문장 실력이 쑥쑥 느는 게 보였어요.

2학년 대상으로 한 <장르연구 I-로맨스> 수업에서는 창작 로맨스물 기획안 작성을 목표로, 로맨스 장르물의 필수요소와 하위장르, 장르 특징 등을 수업했습니다. 재밌었던 점은 학생들 기획안 과제 대부분 ‘20대 인물/현대 배경/판타지 소재’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20대 초반의 관심사가 어디로 향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어요.

많은 사람이 로맨스를 ‘쉽고 가벼운, 매우 흔한’ 장르라 여깁니다. 사실 로맨스는 아주 정치적인 장르입니다. 젠더이슈는 그중 핵심이죠. 제 수업에서도 로맨스 장르에서 흔하게 보이는 데이트폭력과 스토킹 장면, 젠더이슈, 그리고 퀴어이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낯설어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공감하거나 궁금해 했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21세기를 살고 있는데, 세상만 20세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도 종종 들곤 했어요.

2학기에는 <문장과 어휘표현 II>와 <공동창작 실습>을 수업합니다.

현업 작가로서 보실 때 다른 대학의 문예창작학과가 아닌 청강대 웹소설창작전공이 갖는 장점은 무엇일까요?

저는 문예창작과와 극작과를 다니며 순문학과 희곡을 공부했습니다. 예고와 예대를 거쳐 글을 쓰고 평가받으면서 제가 졸업할 때 내린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나는 글을 쓰지 못한다.’ 배울수록 못 쓰고 못 쓰게 된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 잡지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창작은 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글을 쓰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요. 전부 다 그렇진 않지만, 어떤 교육은 학생들의 기를 꺾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합니다. 저는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교육받았지만, 그와 별개로 시스템은 저를 ‘왕년의 문학소녀’가 되도록 만들더라고요. (이것은 개인의 경험에 기반을 둔 이야기입니다. 일반화는 말아 주세요)

일단 쓰고 만드는 게 즐거워야 합니다. 즐거워야 버틸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창작업을 기발한 아이디어가 통통 튀는, 무언가 특별한 작업이라 여기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창작 대부분은 버티는 일입니다.

지치지 않기 위해선 즐거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신을 아끼고 좋아해야 합니다. 자신을 싫어하면 ‘결과물(인기, 성과, 히트작)도 없이 좋다고 처웃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용서해도 되거든요. 결과물, 예술 그 자체가 삶의 이유는 아니니까.

청강대학교는 학생들에게 성장할 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 펜을 꺾으려 들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청강대학교 웹소설창작전공은 여타 예술대학교와 분위기가 다릅니다. 아주 학구적인데 ‘오덕오덕’하고, 조용하지만 개방적인 분위기? 마치 시원한 빨강 같은 소리지만 실제로 그러합니다. 공룡으로 치면 브라키오사우르스와 트리케라톱스 같은 초식공룡들이 타인 신경 쓰지 않고 각자가 좋아하는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이랄까요.

학생들이 수업이나 학교생활을 통해 꼭 얻어갔으면 하고 바라시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1학기 때 어떤 학생이 ‘지금부터 열심히 해도 괜찮을까요? 늦지 않았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너무 빨리 정신 차렸다. 방황이란 게 한 1~2년은 해야지’라고 답했습니다. 지금 20대는 과거의 20대와 다릅니다. 아주 치열하게 살고 팽팽하게 견딥니다. 학생들이 학교 다닐 때만큼은 자신을 유예하길 바랍니다. 데뷔가 늦어도 됩니다. 글 쓰는 일은 나이 먹을수록 더 잘합니다. 글 쓰는 분야는 천재가 통하지 않고, 어렸을 때 반짝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학교 다닐 때만큼은 많이 방황하길 바랍니다. 모든 경험이 미래의 내 밥벌이(소재)가 되어줄 겁니다.

청강대 웹소설창작전공에 지원할까 말까,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잊을만하면 어디선가 ‘웹소설이 돈이 된대’, ‘잘리지 않는 평생직장이야’라는 말이 들려옵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완전히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니지만, 어떤 작가님들은 웹소설로 큰 부와 명예를 누리고 계실 테니까요. (부러움) 끊임없이 가치평가를 당하는 직업이기에 평생직장이면서 ‘만년 퇴직예정자’인 채로 삽니다. 모든 직종이 그렇듯, 낭만과 현실이 공존합니다.

아마 많은 학생, 학부모, 교사분들이 ‘이걸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하실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작가를 원합니다. 웹소설뿐 아니라 장르 소설, 영화, 방송, 광고, 그 외 다양한 산업에서 스토리텔링을 필요로 하니까요.

학교와 전공이 나와 잘 맞을지 알려면 그 학교의 커리큘럼을 확인하면 됩니다. 그 학교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듣는지 확인하고, 그 과목에 흥미가 당기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결정은 그 후에 해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