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MC Critic] 소설의 ‘장르’와 ‘장르 판타지’

웹소설의 장르장르 판타지

판타지는 가상 세계나 환상이 아니라 소비자와 욕망의 은유이다.

이융희(만화콘텐츠스쿨 웹소설창작전공 교수)

웹소설에서 사용되는 ‘판타지’ 개념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대중적인 편견부터 짚고 넘어가자. 한국 웹소설 시장에서 ‘장르’라는 고전적 개념은 큰 의미가 없다. 문제는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가 ‘장르’ 하면 떠올리는 정의가 바로 이 고전적 의미의 장르 개념이란 점이다. 한국에서 ‘장르’는 영화, 소설, 만화 등 다양한 매체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됐으며, 특히 웹소설의 기반이 된 로맨스나 판타지 소설의 영역에서 ‘장르’라는 단어는 더욱 그러하다.

과거 문학, 또는 소위 ‘장르문학’이라고 부르는 시공간에서 ‘장르’는 “고유한 서사 규칙과 관습화한 특징들이 있어서 독자들에게 별다른 정보가 제시되지 않고 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누구든지 책을 펼쳐 드는 순간 그것이 어떤 장르에 해당하는지 알게 되는 작품”이란 개념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별다른 정보가 제시되지 않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라는 문장과 ‘고유한 서사 규칙’이라는 두 가지 문장이다.

장르의 고전적 정의는 사람들에게 판타지의 클리셰, 또는 영웅의 여정 같은 서사의 구조에 골몰하게끔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서, 특히 장르문학의 웹소설 영역에서 ‘장르’란 이런 정의로 포획되지 않는 별개의 정의를 가진 독자적 존재란 점이다. 오히려 한국 판타지 소설의 시장에서 ‘장르’는 탈-서사, 또는 반-서사적이며, 텍스트 내부의 정보가 아니라 그 바깥의 소비자들까지 포함하는 추상적 개념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웹소설 작가이자 연구자인 김준현 교수는 장르문학의 향유자들이 ‘장르’와 유사한 개념으로 쓰이는 기호까지 포괄해 ‘장르’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현상을 지적했고 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던 장르라는 정의처럼 장르라는 구분이 애초에 완전하게 객관적이고 상호배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포괄적 지칭임을 논증한다.

더군다나 현재와 같은 웹소설 시장에서 많은 연구자나 현업의 종사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해시태그(#hashtag)의 형태로 세분화하여 나눠진 요소는 고전적 장르의 요소를 모조리 붕괴시켰다.

(출처 : 카카오페이지)

최근 웹소설 판타지에서 자주 사용되는 요소들을 해체해보자. ‘게임판타지’라는 요소에서 HMD(head mounted display) 기기를 쓰고 뇌파로 가상 세계에 접속하는 행위는 SF인가 판타지인가? 스킬의 성취도를 ‘1성’, ‘2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협의 요소인데, 이것을 판타지에서 사용하고 있으면 그것은 판타지인가 무협인가? 무협이라는 것은 ‘중원’이라는 가상적 질서의 세계에서 무와 협의 격돌로 이루어지는 텍스트인데,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 무협이 무와 협을 다룬다고 해서 과연 ‘무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렇듯 각각의 요소가 구현된 개별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무대의 설치, 세계상the world picture에 따라 고전적인 장르 구분을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별 작품에 대한 오타쿠적 명명일 뿐 작품군을 일컫는 ‘장르’란 개념에서 벗어나는 행위에 불과하다. “장르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수사학적 방식이 정형화된 것”이라는 구조주의적 장르이론의 정의처럼, 장르는 내부의 텍스트뿐만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넓은 테두리의 경계선이며, 그 경계 자체도 흐릿하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웹소설에서 사용되는 ‘판타지’란 개념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기존의 장르이론, 그러니까 용이나 마법, 기사가 등장하고 신이 있고 중세를 배경으로 한 유럽인들이 뛰어다니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어떤 환상을 펼쳐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세밀하고 파편화된 로그 라인과 소설 1~2편의 공식, 즉 현재 소비되고 있는 웹소설들을 읽고 분석해야 한다.

마침 이러한 분석을 잘해준 두 사람의 이론가가 있다. 우선 살펴볼 이론은 『웹소설 작가의 일』을 출간한 김준현 교수의 정리이다.

그는 웹소설 장르 판타지의 플롯을 “주인공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상태(회귀, 전지, 초현실적 능력 등) → 사실상 라이벌이 아니지만 라이벌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의 무용한 도전 → 목표를 이룸”이라는 형태로 정리한다. 이렇나 반反서사적 형태에서 ‘장르’는 서사가 아니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주인공의 상태나 힘에 불과하며, 위기가 없고 오로지 성공만이 예비된 이러한 형태를 ‘핵을 이용해 자기가 이기게 되어 있는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느끼는 재미’와 같다고 분석한다.

두 번째로 살펴볼 이론은 『밀리언 뷰 웹소설 비밀코드』를 집필한 진문 작가의 이론인데, 그는 소설의 1화 안에서 ‘실패한 과거사-회귀-새로운 인생을 사는 이야기’가 모두 나와야 한다고 당부한다.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판타지 세계나 꼼꼼하게 짜여진 플롯이 아니라 오로지 주인공의 ‘매력’이며, 이러한 매력은 독자들의 강박적인 성향, 즉 끊임없이 외부 대상을 욕망하는 성향을 채워주는 주인공의 힘이나 능력, 즉 코드라는 기호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다.

독자를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사이다를 예비한 뒤, 악당들의 ‘무용한 도전’이 반복되는 장르 판타지의 구조는 프로타고니스트의 여정을 막아서는 안타고니스트의 저항을 더는 시련이라 호명하기도 힘들게끔 한다. 주인공은 이제 더는 시련을 겪지 않고 그저 자신의 선택 때문에 수행하느냐/마느냐로 나누어진 퀘스트적 상황에 놓일 뿐이며, 이렇듯 웹소설의 서사 구조는 소설적인 완결성보다 게임의 하이퍼텍스트적이고 유저 수행적인 형태로 변모한다.

퀘스트를 수행하다 혹여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퀘스트의 실패에 불과할 뿐, 캐릭터의 목적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설령 게임 오버가 된다 하더라도 주인공은 플레이의 기록을 모두 가진 채 ‘회귀’를 통해서 처음부터 스토리를 진행하면 된다. 수십 번의 공략을 통해 어려운 게임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해가는 유저처럼 말이다.

길었던 글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한국 웹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장르 판타지’는 서사를 이야기하거나 가상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고 현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마법이나 초능력 같은 뚜렷한 이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소설도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까닭은 지금, 여기의 웹소설 속 ‘장르’ 개념은 독자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기호, 코드의 조합인 동시에 독자들 그 자체의 이름이기 때문이며, 이 속에서 중요한 것은 ‘욕망’과 그것을 이루어주는 ‘힘’, 두 가지의 키워드이다.

그러니 판타지 웹소설을 주목하고 있다면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작품을 읽어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독자들이 왜 욕망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욕망을 해결함으로써 어떤 보상을 받게 되는지를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