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MC X EBS Guide] 웹소설의 주제의식

출처 : 웹소설 창작 특강 38강 ‘웹소설의 주제의식’ 

웹소설은 구성이 단순하고 오락성이 강하며, 매회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깊이가 없다는 편견을 통쾌하게 무너뜨리는 시간! 묵직한 사회 이슈와 무거운 주제 의식을 어떻게 편안하게 담아내는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웹소설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소설가 겸 문화 연구자 이융희입니다.

여러분, 웹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혹은 장르 문학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저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자나 심지어 이 방송을 하시는 저의 동료 교수님들도 다 이런 얘기를 할 거예요. 야, 웹소설 그거 주제 의식 없지 않아? 그거 되게 유치하고 뻔한 얘기만 하고. 그 상업적인 소설 막 이러면서 블라블라블라 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잖아요.

하지만, 모르시는 말씀! 웹소설 역시도 깊은 주제 의식을 다루고 이 독자적인 주제와 메시지를 다루는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소설은 철학의 시녀다, 이런 말 분명히 들어보신 적 많으실 겁니다. 이 말뜻은 소설의 경우 이야기를 통해서 깊은 주제와 철학적 사유를 던진다는 말이죠. 아마 문학을 좋아하시고 소설 읽기를 즐기시는 분 분들이나 인문학 공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런 이야기에 동의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명제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게 조금 이상하지만 그러는 분들이 꽤 많아요. 이를테면 어떤 소설에는 철학적 사유가 들어가고 어떤 소설에는 철학적 사유가 들어가지 않고 그래서 가볍고 하찮고 얕잡아 보게 된다는 거죠. 사실 우리의 삶에서 장르 문학이 그리고 웹소설이 쉽게 곧 노출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속상한 부분이기도 해요.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출판사 사장님이랑. 제가 개인적으로 면담을 하는 자리였는데요 가서 “안녕하세요. 웹소설 작가 이용희입니다.”라고 얘기를 하니까 아 저희 출판사에서 이제 웹 소설을 하나 출간 계약하기로 했는데 제가 작품 검토한다고 읽어봤더니 그게 내용도 없고 이런 걸 소설이라고 읽고 있고. 모든 웹 소설에 대한 불평불만을 저한테 하는 거예요. 그런데 들어보니까 그 사람은 그 웹소설 한 편만 읽고 그런 얘기들을 하는 거였죠. 그런 얘기들을 듣고 마주할 때 우리는 그리고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 웹소설 읽고 말하는 거야 아니면 웹 소설을 읽을 수 있긴 한가 이런 지점이요.

물론 글을 읽을 줄 알고 글자를 읽을 줄 알면 웹 소설을 읽을 수 있죠. 제가 말하는 것은 이 안에 있는 내용을 읽어낼 수 있고 수용하고 즐길 수 있는 이걸 우리가 리터러시라고 합니다. 독해력인데 독해력이 존재하는가. 그 읽을 수 있는가를 상시 점검해 봐야 합니다.

웹소설은요. 기존의 문학 창 그리고 문학의 문법 속에서 작품을 읽어내는 방식과 달리 개별 작품으로서 짧게 글을 읽고 독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저 거대한 장르 군 다양한 작품들을 교차하면서 읽어내는 장르의 독해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장르라는 것은 집단이 공유하는 약속이고 작품과 작품을 넘나드는 것입니다. 10권이 넘는 긴 소설에서 사건의 호흡과 동떨어져 소재를 어떻게 다루는가? 그리고 사실을 어떻게 재현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지점이 기성세대들에게는 굉장히 낯설 수 있다는 거죠.

이를테면 <닥터 최태수>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닥터 최태수>는요 3천600편 정도가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소설이에요. 외전도 계속 연재돼서 일부 완결이 됐는데 소설책으로 치면 100권 정도의 분량이 됩니다. 소설책 100권이면 그 사람 어마어마한 상상력이 있는구나. 어떻게 그걸 다 쓰라고 할 때 그것을 상상력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사건들이 계속 변화해 가고 있고 메인 패턴들은 정해져 있는구나. 그럼 그것을 어떻게 읽고 우리가 어떤 내용을 소비해야겠다는 개념들이 있단 말이죠. 그 개념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그 두 부류는 그 <닥터 최태수>라는 소설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나 읽어내는 방법이 다를 겁니다. 제가 좀 어렵게 설명을 하고 이론적인 설명을 한 것 같아서 신문 기사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이걸 바탕으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신문 기사의 내용입니다. 제 내용이 아니니까요, 여러분 제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화내시면 안 돼요. 저도 화나는 기사니까 최대한 감정을 담담하게 ASMR 방송하듯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웹소설의 미래도 지금처럼 장밋빛일까? 꼭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다. 언급했듯 웹소설은 구성이 단순하고 오락성이 강하다. 매주 3에서 5회씩 출간하는 특성상 매편 소비자들이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웹 소설은 깊이가 없다는 질타를 받는다. 웹소설 플랫폼의 한 관계자는 1, 2화만 보고 1기를 중단하는 독자가 적지 않다면서 대부분 웹 소설의 이야기가 비슷한 흐름으로 진행되다 보니 독자들도 쉽게 흥미를 잃는다고 꼬집었다. 인기작을 표절한 작품이 수두 하다는 점도 웹 소설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지만 이를 제지할 방법은 아직 없다. 무섭게 몸집을 불려가는 웹소설이 모래성처럼 위태위태 보이는 이유다.

저는 이 기사들 이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장르에 대해서 조금 더 공부했으면 좋겠다. 우리 EBS 라디오를 들어야 하는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모방이라든가 작품에 대한 어떤 개인적인 어어 퍼스날리티. 개별성이나 유니크함 그리고 그 안에 아우라 같은 개념들은 제가 처음에 설명해 드렸던 장르 집단으로서의 장르이자 약속이자. 작품군의 기준이랑 전혀 다르거든요.

이것은 수영 선수의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수영의 규칙으로 권투 선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같이 문학이고 소설이지만 전혀 다른 종목에 대해서 기준점을 적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거 전형적으로 웹소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읽지 않는 사람이 쉽게 쓰는 기사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장과 논거를 해체해 볼게요. 구성이 단순하고 오락성이 강하며 매회 이목을 끌어야 하므로 깊이가 없다는 게 이 기사의 논조였어요.

그런데 이건 그냥 원인과 결과를 단순히 나열했을 뿐 사실 웹 소설의 형식에 대해서 인상 비평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구성이 단순하고 오락성이 강하다 이건 구성적 특징이지 소재와 서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회 이목을 끌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러한 인식 아래에는 구성이 복잡하고 오락성이 없어야 하고 이목을 끌 필요 없이 고고함으로도 예술성이 유지된다는 고급 예술에 대한 편견과 허래 어식 같은 것들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단순한 편견인데 그럼 구성이 단순한 문학은 존재하지 않나요. 단순하고 쉽게 쓰여진 시가 진리를 전달하고 있지 않나요. 오락성이 강한 문학은 없나요. 매회의 이목을 끌어야 했던 신문 소설들은 문학적 가치가 없을까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민문학이라고 이야기되는 춘원 이광수의 무정 역시도 신문 연재소설이었죠. 사실 이건 문학이라는 세부 내용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우상처럼 만들어진 문학이라는 이름과 개념 그 자체에 대한 더 씌우기에 불과합니다. 물론 대중 소설인 만큼 웹소설이 판매되는 목적으로 쓰인 거니까요. 대중 독자들의 욕망이 무엇인지 그것을 좀 더 말초적이고 원초적으로 전달하는 경향이 있겠죠. 하지만 그러한 재미 없이도 결국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인데 재미에서 벗어나 고고한 글만이 같이 있다는 건 사실 그 고고함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환상이자 어떤 기대감 같은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인 거죠. 오히려 웹소설은 이렇게 편안하고 단순한 패턴 속에서 다양한 문제의식들을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현시대에 충실한 문제의식 말이죠. 저는 이런 것을 컬트적 저널리즘이라고 부릅니다.

*이 강의는 팟빵 ‘웹소설창작특강’에서 계속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