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MC Critic] <굿 플레이스>, 사후세계에 대한 최첨단의 가설

*글 : 홍석인(만화콘텐츠스쿨 웹소설창작전공 교수)

출처 : NBC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굿플레이스>의 첫 에피소드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미국 애리조나 출신의 엘리너 셸스트롭은 소파에서 눈을 뜬다.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와있는지 영문을 몰라하다, 어떤 노신사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로 들어가 설명을 듣는다. 엘리너는 이미 죽은 사람이며, 생애 동안 베푼 선행 덕분에 사후세계에서도 소위 ‘굿 플레이스’라고 부르는 곳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멋진 집과 친절한 이웃이 주어지고, 이 우주가 설계한 영혼의 단짝을 소개받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엘리너는 굿 플레이스에 초대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동명이인이 동 시간대에 죽어버린 나머지 우주적인 시스템에 오류가 나서 소위 ‘배드 플레이스’에 입주해야 할 엘리너가 굿 플레이스에, 굿 플레이스에 입주해야 할 엘리너가 배드 플레이스로 오게 되었던 것이었다.

엘리너는 이 상황을 오로지 영혼의 단짝으로 소개받았던 치디에게만 공유한다. 치디는 죽기 전에는 윤리학을 연구하는 학자였기에 엘리너가 배드 플레이스로 떨어지지 않도록, 엘리너가 다시 선량한 사람이 되어 굿 플레이스의 입주자가 될 자격을 얻도록 그를 교육하고자 한다. 이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는 종교적인 사후세계관에 윤리 철학의 역사를 접목해 그 정당성을 따져본 뒤 최신 뇌과학 논문의 연구방법을 활용하여 천국을 설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가히 기존의 사후세계관의 집대성인 것이다.

“너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어.”라는 판결은 “나는 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을까?”라는 성찰과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은 무엇인데?”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천국은 어떤 곳인데?”에서 “천국은 왜 필요한데?”라는 보다 깊은 영역으로 침잠한다. 시스템의 오류인 엘리너 셸스트롭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시스템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까?”에 대한 <굿 플레이스>가 내린 대답은 ‘좋은 게 좋은 거’나 ‘원래 다들 그러고 사니까’와 같은 막연하고 성의 없는 대답과는 큰 거리를 두고 있다.

사후세계는 SF 역사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테마 중 하나다. 물론 과학적으로 사고하자면 사후세계는 입증이 불가능하니 그 존재를 가늠할 수 없다고 결론을 지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죽은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후세계로 가게 될까? 모를 일이지 않은가. 아직 죽었다가 되살아난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혹은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이해가 가능한 해답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해답을 도출하기 위한 방정식에 SF만큼 유효한 접근법도 없다. 그리고 <굿 플레이스>는 윤리에 대한 분석에 있어 그 어떤 작품보다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풀잇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걸작 SF로 분류하기에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