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MC X EBS GUIDE] SF란 무엇인가

출처 : 팟빵 ‘웹소설창작특강’ 8강 SF란 무엇인가

김창규(웹소설창작전공 교수, SF 작가)

SF란 무엇일까요. SF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보죠. 아시다시피 SF는 영어 약자입니다. 과학이라는 뜻의 사이언스(science)의 ‘S’와 소설을 가리키는 허구(fiction)라는 단어의 ‘F’ 이 두 글자를 따서 보통 SF라고 부릅니다. SF라는 말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한번 떠올려보시면 특히 ‘픽션’이 단순히 소설이라는 뜻이 아니라 지연의 이야기를 모두 다 통칭하는 광범위한 단어라는 걸 알고 계실 거예요. 보통 ‘팩트(fact)’라는 단어에 대비되는 말로 ‘픽션’이라는 말을 쓰죠. ‘사이언스 픽션’을 우리 말로 직역하면 ‘과학 소설’이 됩니다.

SF라는 장르는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SF를 최대한 많이 가리지 말고 최대한 많이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그 SF들을 한두 문장으로 전부 아우를 수 있나 생각을 해보세요. 이에 대해서 매우 많은 논쟁이 있었고 엄청나게 많은 답이 제시됐습니다. 정답부터 알려드리면 SF를 한두 문장으로 아우르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조금 과장되게 SF는 당신이 SF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거 전부 다를 포함한다고 SF의 정의를 광범위하게 내려버린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도 기존에 논쟁을 벌이면서 어느 정도 남은 기록이 있으므로 그에 대해서 간단히 같이 한번 더듬어보도록 하겠습니다.

SF의 역사와 정의를 얘기할 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휴고 건즈백(Hugo Gernsback)이라고 하는 인물이고요, 영미권에서 한때는 ‘현대 SF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렸던 사람이에요. 지금은 그 인물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은 것이 알려지면서 약간 평가가 이전과 같지는 않습니다만 이 휴고 건즈백이 처음에 내렸던 SF의 정의가 있습니다. 이 정의를 현대식 문맥에 맞게 수정을 해보면, ‘SF란 과학적 발견이나 미래에 대한 조망과 함께 엮은 흥미로운 모험담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화학적 발견’, ‘미래에 대한 조망’, ‘흥미로운 모험담’ 이렇게 세 가지에요. 조금 전에 여러분들께서 제가 떠올려보시라고 말씀드렸던 그 SF들이 이 범주에 전부 들어가나요? 현대 SF는 특히 문학인 과학 소설 같은 경우 지금 제가 말씀드린 휴고 건즈백의 이 한 줄짜리 정의만으로는 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광범위한 정의를 하나 말씀드려볼게요. ‘SF는 인간이 과학과 기술의 변화에 반응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이다.’ 한 가지 더 말씀드려볼게요. ‘SF는 인간의 주변을 무대로 삼아서 인간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그 문제는 반드시 과학적인 요소 때문에 발생해야 한다.’ 제가 지금 총 세 문장의 정의를 말씀드렸는데요, 맨 처음에 말씀드렸던 휴고 건즈백의 정의보다 이 정의는 초점이 바뀌었어요. 특히 과학적인 발견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인간이 강조됐어요. 표현을 다시 한번 볼까요? ‘인간 주변을 무대로 삼아서 인간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들이 당장 ‘나는 인간이 중심인 이야기가 아닌 SF를 알고 있는데?’라고 반문하실 겁니다. 떠올리실 겁니다.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 출처 : Macmillan Publishers

여기서 고전 SF 한편을 살펴볼게요.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라고 하는 작가의 <술래잡기(runaround)>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여기엔 로봇이 등장하고요 태양계에서 태양하고 가장 가까운 행성이 수성이죠. 이 수성에 인류가 진출했어요. 그래서 두 사람과 스피디라고 하는 로봇이 파견됩니다. 수성의 표면 온도가 엄청나게 높으므로 스피디가 가서 셀렌이라고 하는 광석을 캐와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스피디가 돌아오지 않아서 이 두 사람이 걱정돼서 찾아가 보게 되고 스피디가 오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죠. 그리고 둘 중 한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 스피디 몸속에 내장된 그 어떤 원칙보다 높은 사람의 목숨을,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최상위 원칙을 발동시킴으로써 스피디를 무사히 회수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이 짧은 이야기는 SF임에는 틀림없어요. 그런데 인간이 중심이 되는 정의의 이야기가 부합을 하느냔 말이죠. 앞에서 말씀드렸던, 인간 주변을 무대로 삼아 인간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이 과연 드라마일까요. 스피디가 오작동하는 이유를 찾아낸 것도 인간 해결책을 찾아낸 것도 인간입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에서 스피디는 과연 그냥 인간 이야기를 하기 위한 소품에 불과하냐는 말이죠. 궁극적으로 SF의 정의를 다루는 강의에서 저의 목표는 제가 나름대로 만든 어느 상황이나 적용할 수 있고 비교적 단단한 정의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긴 거리를 돌아가야 해요.

photo of supernova in gala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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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시간에서는 아주 긴 SF의 정의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끝을 맺을 겁니다. 무려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정의가 있습니다. 이 정의는 제가 만든 건 아니고요. 어느 유명 영미권의 SF 작가가 한 기고문에서 만든 정의인데요, 심지어 다섯 개로 나뉘어 놓고 페이지로 따지자면 A4지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긴 정의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SF를 다 아우르지 못합니다. 그리고 최근 SF는 아우르지 못해요 하지만 꽤 많은 SF가 이 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다음 강의를 들으시기 전에 그 뜻을 한번 잘 생각해보시고. 5개로 구성된 정의가 다루지 못하는 SF들은 무엇인가? 포함하지 못하는 SF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1.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

미래는 지금은 알 수 없으므로 미래 기술을 예측하는 이유의 이야기는 전부 다 1번 정의에 포함이 된다. 간혹 이 1번 정의에 속하는 작품만 SF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어차피 SF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다룬 장르가 아니므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건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는 그게 미래이든 아니든 똑같다 이게 1번 정의이고요,

2. 과거를 배경으로 하되 실제 역사와 다른 이야기.

전부 즉 흔히 대체역사 이야기라고 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전부 다 해당합니다. 이 두 번째 정의에서 실제 역사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 과거를 다루는 이야기는 SF일 수도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어요.

3. 다른 세계 이야기 전부가 SF에 포함이 된다.

미래 인간이 등장하든 안 하든 그건 전혀 상관없고, 독자나 관객이 사는 그 시대 그 장소가 아닌 곳에 아닐 때의 다른 세계를 그리는 이야기라면 전부 다 해당합니다.

4. 이건 좀 의아하실 수 있어요. 선사시대. 즉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 시대를 의미하죠.

선사시대의 지구 이야기도 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고고학적 지식과 다른 이야기. 고고학적 지식에 반하는 이야기. 고고학적인 지식에 반한 이야기가 뭐냐. 그런 이야기들은 예를 들어 지구를 고대에 방문했던 외계인의 이야기. 선사시대부터 지구에 숨어 사는 외계인인 거죠. 이를테면. 현대에 계속 숨어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고요.

4. 엄청나게 발달했던 고대 문명과 관련된 이야기. 이런 것들이 4번 정의에 속합니다.

물론 지금 SF라는 장르에 대해서 익숙하신 분들이라면 지금 이 얘기를 들으면 약간 당황하실 분도 계실 텐데요 왜냐하면 엄청나게 발달했던 고대 문명과 관련한 이야기 같은 경우는 좋은 명작, SF로 남는 경우가 별로 없고 아마 주로 여러분들이 인터넷에서 접하실 수 있는 각종 음모론 그 음모론들에 등장하는 고대 문명을 떠올리시게 할 거라서 그래요. 그런데 제가 지금 이 SF에 4번 정의에서 말씀드리는 저 이야기들은 엄청나게 발달했던 고대 문명만 다룬다고 해서 전부 다 4번 범주에 속하는 SF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니고요, 당연히 저런 소재를 가지고 장르의 장점 및 성격과 들어맞는 작품을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겠죠.

5. 우리가 알고 있거나 정설로 삼는 자연 법칙에 반하는 모든 이야기.

우리가 알고 있거나 정설로 삼고 있는 자연법칙에 따르는 모든 이야기가 아니에요. 반하는 모든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인가. 시간 여행 – 초강속 여행, 투명인간 등을 소재로 하는 얘기를 말하는 겁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여러 과학과 과학 이론과 법칙들에 따르면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의 이야기를 sf에서 많이 보셨을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법칙에 반하는 이야기죠.

아마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5개의 정의를 다 모으면 꽤 많은 SF를 담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5개의 정의와 과학적인 발견에서 인간 중심의 정의로 옮겨왔다는 것이 두 가지 꼭 잊지 마시고 다음 강의에 이어서 들어주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