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MC Critic] 다시 타올라라, 무협의 혼이여!

글 : 김선민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웹소설창작전공 교수, 웹소설작가)

네이버 웹툰의 명작, 무협 웹툰인 <고수>가 얼마 전 완결이 났다. 문정후, 류기운 작가의 전작인 무협 만화의 전설 <용비불패>의 팬이었던 나로서는 웹툰으로 새롭게 이식된 <고수>의 연재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고수>에서 천잔왕 구휘와 용비를 다시 봤을 때 느꼈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고수의 댓글을 보면 <용비불패>나 무협이라는 장르를 모르는 독자들도 무리 없이 작품을 즐기고 그 세계관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네이버웹툰)

무협 장르는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져 온 어떻게 보면 매우 ‘올드’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무협 장르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지점은 아무래도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영웅문> 시리즈를 필두로 고 무협이라 불리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서부터 2000년대 사이에는 신 무협 작품들이 대여점을 중심으로 많이 출간됐다. 나 역시 이 당시 신 무협과 퓨전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자란 세대다.

영웅의 성장 서사를 강조했던 고 무협과 달리 신 무협은 영웅적 이야기에서 벗어나 강호의 주변인들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노병, 사파 출신의 삼류 무인, 점소이 등등. 이런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무림이라는 비정한 세계를 다양한 시각으로 본 것이 신 무협의 특징이었다. 그러던 중 무협은 단행본 종이책에서 모바일 디바이스로 이식이 되며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무협 장르의 새로운 부흥기를 이끈 것은 만화와 웹툰이 아닐까 한다. 출판 만화 시절에는 <협객 붉은매>(글 소주완, 그림 지상월), 현재까지도 장기연재 중인 <열혈강호>(원작 전극진, 만화판 양재현), 천랑열전(박성우) 등 굵직한 무협 만화들이 만화시장의 큰 축을 맡고 있었다. 문제는 출판 만화시장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웹툰 시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초기 웹툰 시장에서는 중원을 무대로 한 전통적인 무협의 배경의 작품보다는 학원 격투물이나 능력배틀물로 형식을 바꾼 작품들이 더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던 중 앞서 언급한 문정후, 류기운 작가의 <고수>가 네이버 웹툰의 새로운 역사를 쓰면서 무협 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줬다. 무협이 단순한 올드 콘텐츠가 아닌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에게 여전히 사랑 받을 수 있는 콘텐츠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이런 무협 웹툰의 인기와는 별개로 웹소설 시장에서도 무협 소설은 꾸준한 인기를 보여줬다. 웹소설의 대표적인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 시리즈의 상위권 작품을 보면 전체 작품 수와 비교하면 무협 소설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재들이나 보는 것으로 취급받았던 무협 소설이 스스로 진입장벽을 낮추고 새로운 독자들을 유입시키고 있다.

노경찬 작가의 <아비무쌍>은 웹소설로 나왔다가 다음에서 웹툰으로 각색이 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진중한 스토리에 멋진 작화와 화려한 연출이 결합하자 폭발적인 상승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정준 작가의 <화산전생>은 회귀 무협의 장을 연 작품으로 역시나 웹툰으로 각색이 되면서 많은 팬층들을 무협 장르로 끌어들였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장씨 세가 호위무사>의 경우에는 조형근 작가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소설과 웹툰 모두 명작이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다. 이처럼 무협 장르는 다양한 트랜스미디어를 통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대중적 콘텐츠 소재로서 충분한 힘을 갖추게 된 것이다.

왼쪽부터 아비무쌍 / 장씨세가 호위무사 / 화산전생 (출처 : 다음웹툰 / 네이버웹툰 / 카카오페이지)

무협 장르의 변화는 특히나 웹소설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구파일방과 마교로 이루어진 무림의 세계관 틀을 벗어나 독특한 소재들을 덧붙여서 무협의 한계를 돌파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이런 실험적 무협 작품 창작의 시도는 특히나 문피아 플랫폼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독특한 무협 작품 두 가지를 꼽아 보자면 녹색여우 작가의 <우주천마 3077>과 컵라면 작가의 <무림서부>를 들 수 있다. <우주천마 3077>은 우주개척시대에 깨어난 천마가 무림 우주 활극이라 할 수 있다. SF 장르인 사이버 펑크와 무협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으로 작가의 세세한 세계관 설정이 돋보인다. <무림서부>는 서부극과 무협을 결합한 세계관을 배경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일종의 대체역사물로 한나라가 1,000년 동안 유지되고 있으며, 강력한 황군을 피해 중원인들이 신대륙으로 진출해 이를 개척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다소 황당한 소재인 듯싶지만 작가의 뛰어난 필력으로 소재들을 소설에 잘 녹여내 몰입감이 매우 좋다.

(출처 : 네이버시리즈 / 문피아)

기존의 무협은 소설의 무대가 중원을 벗어나는 것을 금기시할 정도로 클리셰가 강한 장르였다. 하지만 더 많은 독자가 유입되면서 새로운 소재로 무협의 범위가 더욱더 확장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 무협의 부동의 1위인 조진행 작가의 <구천구검>의 경우에는 무협의 장르에 선협물이 섞이며 세계관을 넓혔고, 구로수번 작가의 <전생검신> 역시 무협에 무한회귀와 크툴루 신화라는 소재를 섞어서 독특한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런 세계관의 확장은 장르의 틀을 넘어서서 로판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브라이트 작가의 <무협지 악녀인데 내가 제일 쎄!>와 같은 작품은 무협을 배경으로 한 로판의 유행을 이끌었다. 보통의 로판은 주인공이 판타지 로맨스물에 빙의하는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다름 아닌 무협지의 악녀에게 빙의해서 새로운 재미를 끌어왔다. 기존의 로판 배경이 아닌 중원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로판물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으로 현재는 각색되어 웹툰으로 연재를 하고 있다.

(출처 : 카카오페이지 / 카카오페이지 / 네이버시리즈)

위의 사례만 보더라도 무협이라는 장르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럼에도 무협 장르는 타 장르와 비교하면 진입 장벽이 높다는 인식이 있다. 어려운 한자 용어들과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클리셰들의 양이 상당하므로 무협을 즐겨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를 읽기도 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협 장르는 수요와 비교하면 공급이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필자 역시 웹소설의 데뷔를 무협 장르로 했기에 무협에 큰 애정을 품고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무협 작품을 구성할 필수적인 클리셰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요즘은 그런 제한 사항들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 추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무협 작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만약 처음으로 웹소설을 쓰려는 지망생이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무협 소설로 첫 데뷔를 준비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앞서 말했든 무협은 수요와 비교하면 공급이 상당히 부족하다. 점차 뚫기 힘들어지는 웹소설 데뷔 시장에서 무협 장르로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경쟁률을 줄일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무협 장르는 판무 콘텐츠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무협을 쓰고 나면 쓸 수 있는 영역이 무척이나 넓어진다. 전통 판타지, 게임 판타지, 헌터물 등등 영웅 서사를 바탕으로 한 장르를 쓰는 기본적인 골자를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양한 장르로 새롭게 발전해가는 무협의 장르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낯선 소재와 배경에 두려워 말고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 무협의 혼은 죽지 않고 더 세차게 타오를 것이니 망설이지 말고 이를 가슴에 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