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충무로 ‘입봉’을 꿈꾸는가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단편 [교정 보는 로봇]에서 로봇이 단순노동을 대체했을 때 인간이 상실할 것들에 대하여 예언한 바 있다. 이 단편은 미래의 지구에서 사무 전반을 대행하는 로봇 EZ-27호가 대학에 임대되었다가 논문을 제멋대로 수정하는 사고를 저지르며 일어난 법정공방을 다룬다. 이 사건의 진범인 닌하이머 교수는 자신의 논문을 퇴고하며 정독하는 과정이야말로 작가에게 있어 가치 높은 노동이며 로봇들이 인간에게서 노동을 앗아가는 일은 결과적으로 인간을 로봇에게 명령만 내리는 존재로 격하시킬 것이라고 항변한다.

아시모프의 예언에 있어 우리의 현재는 부분적으로나마 더 나아갔지 싶다. 인공지능이 만든 영화각본 [선스프링]과 소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 영화제와 공모전에 출품이 된 오늘날의 뉴스를 보라. 로봇이 인간들이 쓴 원고의 교정을 봐주기는커녕 인간들이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의 교정을 보고 있는 노릇이지 않은가. [선스프링]과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의 작품성은 썩 신통하진 않다. 어디까지 사람의 간섭이 있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는 한시적인 문제일 것이다. 인공지능과 저장용량의 발달의 속도가 특이점을 넘어서는 순간이 온다면 존재가능한 모든 장서가 구비되어있다는 바벨의 도서관을 물리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예술과 창작에 있어 인간의 고유성을 구태여 수호할 염치는 없다. 그러면 이후 인간들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닌하이머 교수의 염려대로 인간은 그저 어떠한 창의력도 없이 수동적으로 리모콘만 만지며 사는 존재로 격하될까?

인공지능이 데이터에 의거해 문장을 배치한 결과물은 자동기술법을 사용한 초현실주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저자의 의도가 부재하고 수용자의 해석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특히 인간 이성의 영역을 넘어선 창작 방식으로 인간으로서는 쉽사리 가닿을 수 없는 원초적이고 원형적인 무엇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시도는 마치 점을 보는 것과도 같다. 카드를 뒤섞거나 쌀알을 뿌리고 생년월일을 조합해 상징적인 개념들을 새로이 배열하고 자신에게 맞추어 재해석하는 여정들. 상담자가 하나의 키워드를 제시하면 카드는 랜덤한 방식으로 배치되고 점술가는 테이블 위에서 새로운 서사를 짜맞추어 낸다. 이성이 아닌 우연의 영역에서 세계의 거울상을 만들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를 찾는 과정은 인공지능의 창작방식과 무척 닮아있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그들이 우리의 지적노동을 대체하는 과정은 분명 닌하이머 교수의 예언대로 인간을 인공지능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 결과물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인 존재로 바꿀 것이다. 그의 우려대로 인공지능은 우리의 질문과 요구에 답을 내려줄 테니까. 그리고 이렇게 질문과 답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은 겉보기에 점술가의 일방적인 점괘와 이를 타성적으로 맹신하는 상담자의 모습으로 읽히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교정을 보는 일에서, 단순한 반복노동에 불과한 일에서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항변하던 닌하이머 교수의 예언은 자기모순적이다. 닌하이머 교수가 논문 초고의 교정을 보는 과정을 소중히 여긴 이유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닿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과정이었다는 교훈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공지능에게 명령을 내리고 편히 답을 얻는 삶이야말로 역설적이지만 질문으로 가득 찬 삶이라 할 수 있다. 답은 언제나 그 자체로 완결이 나지 않으며 다음의 질문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 의한 것이든 스스로 찾아낸 것이든 말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우리가 질문을 던질 또 하나의 동지와의 만남이라는 고마운 선물이다.

또 하나의 SF작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SF작가 더글라스 아담스의 작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인공지능 ‘깊은 생각’이 내린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질문과 그 해답과 관련된 사건사고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해답은 ‘42’다. 이 답이 무슨 의미인지 영문을 몰라 헤매는 사람들에게 ‘깊은 생각’은 답은 맞지만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답할 뿐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따르면, 답의 질문을 알아낸 순간 우주는 완전히 소멸되었다가 보다 더 이해하기 어렵고 성가신 우주로 재구성이 된다는 가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보다 더 도전적인 가설에 의하면, 이런 일은 이미 몇 번이고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니 이 소설 속에서 정신과 의사들이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이 밝혀질 경우 상담을 하러 올 환자들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우려에 초공간 고속도로 우회로 건설을 가장해 지구를 파괴할 필요도 없었듯, 인공지능의 등장에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리라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출처: https://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6061909417245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