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정 교수는 2019년부터 SF어워드에 새롭게 신설된 웹소설 부문의 심사위원을 맡아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웹소설 부문의 심사위원은 총 세 명으로, 전혜정 교수, 이지용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손진원 박사가 함께하였습니다.

전혜정 교수 심사평
2019년, 처음으로 SF어워드에 웹소설 분야가 신설되었다. 그간 웹소설을 둘러싼 많은 시선들이 있었다. ‘10대가 읽고 쓰는 인터넷 게시판형 픽션’에서부터 ‘좀비화 된 대중문학’이라는 인식이 그 한 축이다. 반대로 ‘시대착오적 문학 판도를 뒤집을 혁명적 패러다임’처럼 난데없이 거대한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거나, ‘유튜브와 비슷한, 스낵컬처 속성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아이템’와 같은 사업적 분석도 있다. ‘웹소설 독주회까지 굳이 찾아와서 순문학이니 장르문학이니 하는 소리 좀 나게 하지 말라’라며 불쾌감을 표시하는 목소리도 있다. 순문학이 장르문학을 내려다보던 관점 그대로, 장르문학에서 웹소설을 내려다보려는 관점도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도 웹소설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웹소설은 짧은 시간 안에 문학과 엔터테인먼트적 속성을 다 뭉쳐가며 몸집을 부풀린 거대 혼종이 된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웹소설을 ‘장르문학의 모바일 커스텀’으로 인식하고 있다. 장르문학의 줄기에서 이해하되, 매체의 속성에 따라 그 예술적 형식이 특화되는 미디어 스토리텔링 관점으로 분석한다. 웹툰이 출판만화와 비교하여 어떤 차이와 반복을 수행하는지 이론 정리하던 작업과도 비슷하다. 즉 웹소설은 우리 장르의 뉴타입이다.
그러니 SF어워드에 웹소설 분야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안드로이드를 놓고 인권을 고민할 줄 아는 SF계에서 가장 먼저 제도의 문을 여는 것도 당연하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새로운 인류와의 공존을 인정하자던 SF 속 캐릭터들의 결단처럼 웹소설 분야가 신설된 것이다. 그 결정에 감사드린다.
압도적 감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심사위원을 그만두고 탈주하고 싶다는 충동은 거셌다. 일반적으로 SF라고 볼 수 있는 설정들, 이를 테면 게임 속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추려보면 한 플랫폼에서만 300건 넘게 검색되었다. 분량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게임 속 세계’라는 설정은 상당히 SF적이지만, 만약 그 게임이 농장 경영 게임이라면? 또는 판타지 게임 속에서 신분 상승을 노리는 중세적 가치관의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면? 흔히 게임소설로 분류되는 웹소설 전부를 SF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토론 끝에 조건부로만 인정하기로 했다. 게임은 물론, 가상세계, 타임머신, 타임슬립, 거듭되는 시간, 이세계를 잇는 포탈처럼 SF적 소재라도 이것들이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SF적인 세계관이나 가치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경우에만 후보에 남기기로 했다. 이렇게 다분히 전통적이고도 엄격한 합의 하에 작품들을 읽어보고 분류하면서 많은 수를 제외했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작품들이 (수십에서 수백회차를 자랑하는) 예심작에 남아 있었다. 상당수는 대중적으로도 큰 흥행까지 했다. 외부에서 웹소설을 문학으로 보느냐 마느냐 하고 있는 동안, 이미 웹소설 내부에서는 수많은 장르문학들이 나름의 형식을 완성한 채, 대중과의 랑데부에 성공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기나긴 여정 끝에 <70억분의 1 이레귤러>, <나 혼자 천재 DNA>,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낙원의 이론> <내 안드로이드> <레인보우 시티> <블라인드> <사상 최강의 보안관> <에볼루션!>을 본심에 올렸다. 이 중, 대상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사상 최강의 보안관>을 선정하였다. 정통 SF 하드보일드에 기대할 수 있는 요소를 모두 충족시키는 수작으로, 보안관인 주인공이 부업으로 흥신소(!) 일을 겸하며 겪게 되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 가벼운 농담들이 어두운 세계관과 균형을 이루고 있고, 묵직한 주제의식이 매 에피소드마다 존재감을 드러낸다. 얄팍한 통찰로 설교하려 하거나, 서투르게 갈등을 봉합하려 들지도 않는다. 때로는 인류 커뮤니티에 대한 희망 자체를 포기한 듯한 작가의 시니컬함도 엿보이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각 개별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 이를 보상한다. 웹소설답게 전개가 빠른데 밀도도 높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쫀쫀한 구성도 노련하다. 여러 모로 SF 웹소설 역사에서 분수령이 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수상으로는 <나 혼자 천재 DNA>와 <내 안드로이드>를 선정하였다. 2등과 3등의 순서에 대해서 심사위원 간에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이 둘을 우수상으로 선정하는 데에서는 역시 만장일치였다. <나 혼자 천재 DNA>는 웹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을 SF적으로 잘 접목한 예다. 웹소설에서는 무력, 외모, 애교(?), 재력, 게임 스킬, 인생 경험 등등,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그 능력을 활용하여 어려운 문제를 시원스레 해결해 나간다는 식의 이야기 패턴들이 있다. 이런 패턴이 지향하는 감정은 후련함이다. 기연을 얻어 무림 최고 고수가 되는 주인공을 등장시키던 무협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이런 패턴의 웹소설은 답답한 일상에 지친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나 혼자 천재 DNA>는 바로 그 능력이 의생명학-이렇게 요약하기도 어렵지만-이다. 생명의 신비를 혼자 꿰뚫게 된 주인공은, 거대한 글로벌 기업과 자본주의가 가진 부조리를 박살내 가며 질병 없는 세상을 향해 질주한다. 그에 더하여 그가 엄격한 연구윤리에 집착하는 성격이라는 설정은, 현실의 부패와 불공평함에 지친 독자들에게 저릿한 후련함을 선사한다. 갈등이 지나치게 짧고, 계속 승승장구만 한다는 점에서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플롯의 묘미는 떨어질지도 모르나, 오히려 스트레스에 취약한 독자들이 정착할 이야기는 바로 이런 작품일 것이다.
<내 안드로이드>는 성인 대상의 SF 로맨스가 얼마나 감각적이고 농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성적 대상화된 안드로이드를 소재로 삼는 것은 SF 내에서는 흔한 발상이지만, 그것을 그저 사건의 계기로만 이용하거나, 선정적인 관심을 유발하는 데에 그치는 작품들도 역시 흔하다. 하지만 <내 안드로이드>는 과잉된 자의식에서 비롯된 선언 없이, 사랑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끼는 안드로이드의 내면을 따라갈 수 있는 섬세함이 훌륭하다. 캐릭터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나 호불호에 대한 감각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이 작품이 SF로서만이 가능한, 잘 만들어진 로맨스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최종 3편에 포함되지 않은 본심작들은 무척 아깝게 느껴진다. 작품성이나 재미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저 SF로서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최종 후보에 오른 세편보다 약간 멀었을 뿐이다. 기회가 된다면 본심작들도 모두 읽어봐 주었으면 한다.
이번 어워드를 통해 이런 작품들을 외부에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짜릿함을 느낀다. ‘느 집엔 감자 없지?’ 라는 점순이에게, 첨단기술로 경작되는 거대한 감자 농장을 헬기로 견학시켜주는 기분이다. 이런 작품을 심사한다는 명목으로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되어서 행복했고, 웹소설 분야를 맡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