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과학과 기술」2019년 12월호 칼럼 (전혜정)

과학과 기술에 청강대에서 진행하는 [과학만화가 양성과정] 관련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제가 그 사업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기술 잡지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고 수준 높은 과학문화 조성 및 확산에 기여하는 잡지로, 매월 연구성과 및 과학기술 관련 정책들에 대한 객관적 내용을 제공합니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한국잡지협회 우수콘텐츠 잡지에 선정되었습니다.

과학자x만화가=최고의 시너지

이제 한국에서 ‘웹툰’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듣도 보도 못한 단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15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웹툰은 그 시기쯤 막 태동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이제 겨우 중학생일 뿐인 웹툰은 한국의 콘텐츠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거대 산업으로 떠올랐다. 웹툰 작가는 연예인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많은 웹툰이 드라마화가 되었다. 예전엔 자녀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면 기함을 했던 시대는 가고, 이제 학부모들이 직접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만화·웹툰 학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함께 회자되기 시작한 대학이 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이하 청강대)의 만화콘텐츠스쿨이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서울 4년제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상학과들에게 밀렸지만 지금은 청강대를 제 1순위로 지망한다는 학생들이 많다. 물론 와서 후회하는 학생들도 역시 많다. 비록 현재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지만, 오기만 하면 꽃밭이 펼쳐진다고 주장하기는 조금 어렵다. 엄청난 양의 일정과 과제들에 치이고, 천재적인 동급생들 사이에서 항상 밝고 긍정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는 힘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술집도 거의 없고… 하지만 이건 본고의 주제가 아니니 넘어가겠다.

여하튼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규모면으로만 봐도 경기도 이천의 한적한 시골 도시에 자리 잡은 이 청강대 만화콘텐츠스쿨은 국내 최대의 만화전문교육기관이다. 이 정도의 규모는 사실상 국제급이다. 1년에 180명의 신입생이 들어온다. 타 대학의 동종학과가 보통 10-20명 단위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럼에도 매번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한다. 한 해 지원자가 천 명이 넘는 것이다. 청강대는 이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커리큘럼 개발에 온 힘을 쏟는다. 물론 대학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이런 숫자가 그냥 나올 리는 없다. 만화·웹툰 산업이 급성장했다는 것은 이렇게 드러난다.

그래서 만화·웹툰을 아주 효율적인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늘었다. 기업이나 제품, 기관 정책 등을 홍보하는 수단으로써 웹툰은 이제 기본 옵션이다. 지식만화는 원래 출판만화 쪽에서는 대세였는데, 이 역시 웹툰으로도 확장되었다. 그래서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웹툰이 활성화되었다. 나아가 개인이 기획하고 작업하는 웹툰형 지식만화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식만화란 것은 원래 업체에서 기획해서 작가에게 외주를 주어 작업하는 것이 기본 형태였었다. 그러나 이젠 개인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린 생각지도 못한 지식만화가 예상치 못하게 인기몰이를 하는 것이다. 물론 과학지식만화들도 많이 등장했다. 업체 기획이든 개인 기획이든 말이다. 유명한 갈로아 작가의 작품들도 그렇고,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출판까지 되어 버린 야밤의 공대생 만화도 그렇다. 과학자들이 직접 그린 과학지식만화도 입소문을 탔다. ‘해부하다 생긴 일’을 그린 정민석 교수나 생화학 관련 지식만화를 그리는 신인철 교수가 속한 의생명과학만화 연구회도 주목을 받았다.

대중에게 어필하는 콘텐츠를 말하는 김에 SF 장르에 대해서도 말해보자. 특히 SF 장르소설은 오랫동안 씨를 뿌려오다가 최근 들어 결실을 맺기 시작하는 분야라고 말할 수 있다. 바깥에서 바라보면 “한국의 SF 판”이란 것이 아직도 마냥 척박하게만 보이는 모양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해외의 SF 시장만큼 시장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또는 국내 SF 영화를 제작하는 움직임이 많이 위축되어 있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SF 장르 소설가들의 활약을 한번 근접 거리에서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튼 한국의 SF는 장르소설을 중심으로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것 외에도 SF 장르가 활성화된 분야가 있다면 어디일까? 물론 웹툰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네이버 웹툰 플랫폼에 들어가면 SF라는 카테고리는 없다. SF라고 검색하면 한 두 편이나 나올까? 그러나 면면을 들여다보면 실제로 SF 장르에 들어가는 작품들은 아주 많고도 다양하고도 인기도 높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유명한 덴마가 그렇고, 노네임드 작가의 작품들이 그렇고, 이런 저런 히어로물들이 거의 다 포함되고, 좀비물도 경우에 따라 포함된다. 입소문을 탔던 금요일이란 웹툰 단편들도 SF이며, 안드로이드가 주인공인 웹툰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제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만화가 양성이라면 자신 있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가 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과학 크리에이터 양성 사업’을 통해서, SF 만화나 혹은 과학지식만화를 그리는 만화전문가를 양성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창의재단과 청강문화산업대학교는 이렇게 랑데부를 한다.

‘과학만화가 양성사업’은 과학만화가가 되고 싶은 지망생을 모집하여 교육을 통해 직업 전문가로서의 바탕을 다져주는 것이다. 과학책방 갈다와 의생명과학만화 연구회의 도움을 받아 과학 교육도 실시한다. 만화 교육은 주로 청강대 교수들이 직접 맡으며, 한국만화가협회의 도움을 받아 특강과 멘토링 프로그램도 구성했다. 또한 과학자x만화가 매칭데이를 통해, 지망생과 과학자들을 연결하여 자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과학도서들도 추천해주며, 도서구입비를 지원한다. 교육을 받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창작지원금을 제공하며, 프로그램 종료시 우수자에게는 상금도 준다.

무엇보다 이 사업이 다른 사업들과 비교하여 가장 큰 차별점이 있다면, 교육생으로 지원한 지망생들을 방학 내 청강대 기숙사에 밀어 넣고 숙식을 제공하면서 3주 동안 지옥스러운 만화캠프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런 제한 조건 때문에 신청자의 모수는 다른 크리에이터 양성 사업에 비해 비교적 적었지만, 일단 이 제한을 뚫고 신청한 이들은 100%, 모두 의욕과 재능이 넘쳐 있는 상태이다. 3주씩이나 몰입하여 붙잡고 있으면 무엇이 나와도 나온다. 게다가 의욕이 넘쳐 있는 지망생의 조합이라면 기대할 만하다. 또한 청강대는 이러한 캠프 프로그램을 기존에도 많이 실시한 경험이 있다. 현재 면접을 통해 최종 31인을 선발한 상황이며, SF 장르를 지원한 지망생과, 과학지식만화를 지망한 지망생의 숫자는 비등비등하다. SF 장르와 과학지식의 대중화가 이렇게 한발 더 다가왔음을 체감한다. 청강대는 이번에 처음 수행하는 ‘과학 만화가 양성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으며, 이 31인을 시작으로 과학 만화가라는 전문인이 한국에 뿌리내리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