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담론(이융희, 전혜정)

1. 추리 장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성적이고 명석한 등장인물이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미스터리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특정한 문학 콘텐츠들을 “탐정소설”, 혹은 “추리소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탐정소설과 추리소설은 그 특징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혼용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탐정소설(the detective novel)이라는 용어를 추리소설(the whodunit)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향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탐정소설의 유형」에서 토도로프 Tzvetan Todorov 역시 두 용어를 애매하게 사용하고는 있지만, 탐정소설을 보다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원래 “탐정소설”이라고 불렀습니다만, 1946년 전쟁 후 상용한자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정(偵)’자의 사용이 불가능해지자 “추리”라는 용어를 등장시킵니다. 그래서 탐정소설이라는 용어를 대체하는 용어로서 추리소설이 된 것이지요. 한국의 경우 이 장르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20년대부터 40년대까지는 “정탐소설”로, 그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는 “탐정소설”로 쓰이다가 1960년대부터 “추리소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현재는 탐정소설보다 좀 더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본 강의는 본 장르의 계보와 구조적인 형식을 파악하는 데에 중점이 있기 때문에, 탐정소설과 추리소설의 용어적 차이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서 이 장르의 고전적인 형태를 말하고자 할 때는 ‘추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현대에 들어와서 좀 더 포괄적인 장르를 말할 때는 ‘미스터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일단 전통적인 추리 장르에 대해서 먼저 말해보겠습니다. 추리 장르는 기본적인 틀을 갖고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에는 범인이 있기 마련이죠. 그 범인을 찾기 위해서 탐정과 조수가 알리바이를 탐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르 이론들을 배울 때 잠깐 점검하고 지나갔던 ‘헤더 듀브로우’ 라는 사람의 실험을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꽃다발을 주었다”

만약 우리가 보고 있는 장르가 추리소설이라면, 우리는 저 꽃다발이 단순히 사랑의 의미가 아니라 수많은 의미를 간직한 도구일 거라고 짐작하고 독해를 하게 됩니다. 이렇듯 추리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과학적 조사와 이성적 합리성에 근거한 추론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추리소설에서 말하는 ‘추리’는 단순히 엄정한 과학성과 합리성으로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추리소설의 명작인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살펴보죠. 처음 왓슨을 만난 홈즈가 이런저런 추리를 연쇄적으로 여줍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다가 오신 모양이군요. 의사 유형인데 군인의 분위기. 군의관일 수밖에. 얼굴은 검게 탔는데 손목이 흰 것을 보니 열대 지방에서 왔겠어요. 얼굴이 핼쑥한 것을 보니 고생했고 아팠군. 왼팔에 부상. 움직임이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움. 열대 지방에서 연국 군의관이 고생하고 팔에 부상을 당할만한 곳이라면 아프가니스탄 밖에 없지!”

홈즈의 명석한 추리에 왓슨 및 독자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이 애매모호한 단서들을 조합해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낸 홈즈를 보며, 우리는 ‘상당히 그럴 듯 한데?’라며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죠. 더 심한 예도 있어요. 「푸른 카벙클」이라는 단편에서 홈즈는 한 중절모를 주은 뒤, ‘이 중절모의 크기가 상당히 큰 걸 보니, 머리가 큰 그는 지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당시에는 과학으로 받아들여졌던 골상학에 기반한 추론입니다. 지금은 골상학은 과학도 무엇도 아니죠.

즉 이런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탐정이 아니라, 탐정의 모든 말을 그럴듯하게 여기게끔 만드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종교의 수호자인 전제 왕권을 끝장내고 대신 합리적인 이성을 숭배하는 세계입니다. 이성을 숭배하는 세계관은 근대, 즉 ‘계몽주의 시대’를 말하죠. 이때 탄생한 것이 ‘지식인’이라는 계층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되는 세계에서, 과학을 잘 알고 진보적인 지식인층은 새로운 시대의 영웅으로 부상합니다. 지식인들의 책무는 무지한 사람들을 계몽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신비주의적 종교관, 봉건적 인습, 무지몽매한 미신 등에서 벗어나, 지식인들이 이끄는 대로, 과학과 기술이 세계를 밝히게 될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이를 ‘탈마법화’라고 합니다. 이러한 탈마법화된 계몽시대의 사조가 반영된 소설이 이성과 합리성, 논리적 인과관계가 명확한 추리소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면 ‘계몽은 곧 탈마법화다’라고 선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야만적인 마법에서 벗어나 광명을 찾는 올바른 방향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막스 베버는 결국 계몽이 수행한 ‘탈마법화’의 정체는, ‘현세에 주어진 일에 충실히 복무해야 한다’는 다른 이데올로기를 불러왔다고 합니다. 즉 직업윤리,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이데올로기죠. 베버는 탈마법화를 진보라고 보지 않고, ‘신을 믿어야 구원받는다’란 생각에서 ‘신’ 대신 ‘노동’이 그 자리를 대체했을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몽정신’이 인간에게 광명만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작용도 있었겠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추리소설이 근대 계몽주의적 사조의 직접적인 반영이라면, 이 시대의 반작용으로 힘을 얻게 된 문학이 있습니다. 바로 환상문학이죠. 주류 신화와 종교가 밀려나간 자리를 개인적 환상, 오컬트 등이 차지합니다. 관련된 내용을 판타지 시간에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배경에 힘입어 에드가 앨런 포우Edgar Allan Poe는 세계 최초의 추리소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The Murders in the Rue Morgue」을 발표합니다. 이후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 앨러리 퀸Elley Queen 등의 추리소설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며 1930년대까지 고전 추리소설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지요.

세계 제 1차 대전 이후 아마추어 탐정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추리소설은 이제 몇 명의 뛰어난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작품들을 사고팔 수 있는 산업적 형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장르의 규칙이 생기고, 추리 소설을 위해서 익혀야 할 규범들이 명확해지기 시작하지요.

2. 미스터리로의 변화

추리소설의 형태는 현대로 오면서 점차 변화하게 됩니다. TV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범죄자들이 점점 강력범죄자에서 경제사범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지요. 세계의 비극은 한 개인의 죽음이나 또는 다수의 사람이 인과관계와 이론에 맞춰서 어떻게 죽었느냐, 왜 죽었느냐에 집중되지 않습니다. 거대한 규모의 경제적 몰락과 이유를 알 수 없는 피해, 죽음에 더 포커스가 맞춰집니다.

추리라는 것이 부조리극이라는 형태로 변화한 것이지요. 부조리극이란, 원인과 결과, 필연으로 가득한 고전적 연극의 형태를 비판하며 현대 사회의 우연성과 비논리성을 보여주기 위해 나타난 연극의 형태입니다. 속 시원한 권선징악도 없고, 명쾌한 인과관계도 없습니다. 모든 사건은 우연히, 마치 자연재해처럼 발생합니다. 해로운 일을 당해도 그것이 죄의 결과가 아니고, 누군가가 어부지리를 얻지만 그가 선량해서도 아닙니다. 사실 고전적인 이야기 텍스트에서는 플롯이란, 원인과 결과가 원자단위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정교한 건축입니다. 그러나 실제 인간 세계는 이야기 속의 세계처럼 그렇게 돌아가지 않죠. 인간 세계는 모든 일이 그저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잠재된 영토이며, 이 모든 사건은 원인에 따른 결과가 아닌, 그저 해프닝일 뿐입니다. 이런 인간의 실제 세계를 반영한 것이 부조리극입니다.

보르헤스의 「죽음과 나침반」을 보세요. 모든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 믿고 치밀한 추리를 통해 사건을 대하는 탐정 렌로트는, 그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음’을 믿는 태도 때문에 덫에 걸립니다.

첫 사건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지만, 범인은 ‘렌로트라면 우연을 믿지 않고 그 이면을 탐구하겠지’라고 믿고 다음 사건부터 함정을 설계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연한 해프닝’으로 생각했다면 렌로트는 덫에 걸리지 않았을 테죠. 즉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스스로 만든 덫에 스스로 걸려들어, 종내에는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간 셈이 되어 생을 마감하는 렌로트야말로, 근대의 이성 만능주의의 종말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은 추리소설의 고전적인 형식까지 파괴하지 않습니다. 사실 보르헤스는 그 형식을 일부러라도 아주 엄격히 따르고 있죠. 사건이 발생하고, 탐정이 추론을 통해서 이면의 숨겨진 진실을 발견한 뒤, 이를 해설하죠. 추리소설의 3막 구조로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1막에서는 사건의 일반적인 사실들이 제시되고, 2막에서는 이면의 진실이 드러나며, 3막에서는 탐정이 진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해설합니다.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라가면서도, 결국에는 이성이 무화되고 마는 보르헤스의 설계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장르로서 작동하는 ‘형식’만이 남고, ‘이성 숭배’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는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고전적인 추리소설을 설명하던, ‘명석한 주인공이 합리적 추론을 통해서 미스터리어스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정의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리소설의 계보를 잇되, 더 이상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정의로는 설명하기 힘들어진 현대의 이러한 장르를 미스터리 장르라고 부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미스터리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인 영화 <화차>입니다. 일본의 소설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전체 사건의 원인을 사회와 경제의 몰락에서 짚습니다. 일본판에서는 이것이 버블 붕괴이고 한국에서는 IMF로 나오지요. 국가 단위의 경제 붕괴 상황에서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삶을 사는가. 그것을 집중해보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행한 나, 몰락하는 나가 나오게 된 것이지요.

과거의 추리소설이 ‘과학적 사고를 통하면 탐정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창작되었다면 현대의 추리소설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라는 명제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지요.

3. 현대의 추리, 그리고 웹소설

과거의 추리소설들이 미스터리 장르로 변화하면서부터 추리소설 작가와 독자가 주목하는 것은 조금 더 다양해집니다. 과거의 추리소설에서 죽은 자들에 대해서 별달리 주목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적극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고려하고 생각해보는 경우가 늘어났죠. 이러한 경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 이라는 장르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화차>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이끈 추리운동으로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단 사회의 구조와 원인에 주목하는 방식입니다.

과학적이고 기계적이던 탐정에게 감정적 요소를 주입한 작품들도 많이 나타납니다. 역시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보여주는 <용의자 X의 헌신>이나 <악의> 등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방식이지요. 추리에 가미된 알리바이보다는 개인이 느끼는 감정과 동기 등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이라는 캐릭터 역시 상당히 납작했습니다. 돈, 명예, 권력, 복수, 자기보호, 신념 등이 동기였죠. 그래서 탐정들이 주어진 단서를 추적하고, 동기가 있을 만한 인물로 용의자를 좁혀서 범인을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경우엔 자신의 직접적인 이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이 나옵니다. 과거의 건조한 이성으로는 동기를 추적하기 힘들고, 그의 감정과 삶의 배경을 알아내고 동감해야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전적인 추리물의 목적이 이런 건 아니었죠.

세계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엄청난 과학기술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천재적 개인인 ‘탐정’에 대해 그다지 신뢰를 갖기가 힘듭니다. 세계는 천재적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셜록 홈즈가 한 여성에게, ‘소매가 닳아 있는 것을 보니 타이피스트 아니면 피아니스트일 것’이라고 말하던 세계를 생각해 보세요. 소매가 닳게 되는 여성의 직업은 그 정도만 떠올려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던 단순한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변수가 무한하죠. 결국 이러한 변화는 잘난 개인에서 팀으로, 전문적 직업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수사물’이라는 장르가 탄생하게 된 계기입니다. 최불암 씨가 열연했던 ‘수사반장’ 같은 작품도 이곳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지요. <CSI 과학수사대> 같은 작품들이 여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역전 현상도 발생합니다. 과학기술이 너무 발전한 나머지 과거의 추리소설에서 공식처럼 사용되던 몇 가지 조건들이 불가능해집니다. 스마트폰이 발명되고 상용화되면서 밀실 살인도 힘들고, 바깥과 연락이 두절된 공간도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GPS를 갖고 다니고 누구나 녹음기를 켤 수 있는 사회가 되어버렸지요.

이런 사회에서 오히려 새로운 시대의 영웅으로 등장한 것은 수사를 지휘하는 팀장. 지휘관 캐릭터나 또는 원초적인 힘, 격투에 능한 경찰관 같은 캐릭터입니다. 마동석 같은 캐릭터가 오히려 과학수사를 외치고 증거를 찾는 ‘고리타분’한 엘리트들과 대립하죠. ‘좋은 대학을 나오진 않았지만 닳고 닳도록 현장에서 구른 형사의 감’ 같은 것이 다시 재조명을 받습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는 현대적 수사물의 정점에 있습니다. 정의로운 형사인 해리 보슈는 악당을 잡기 위해서 추적 및 검거 과정에서 ‘약간의’ 불법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수사를 제한하는 여러 법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동작하는, 인간 문명과 이성의 결정체이지만, 막상 악당들은 이를 이용해 미꾸라지처럼 처벌을 피하죠. 해리 보슈는 정식 절차를 그대로 따라서는 악당들을 잡기 힘들기 때문에, 그의 노련한 형사적 감, 경험으로 쌓은 판단, 법을 우회하는 방법 등을 조금씩 이용하여 악당을 결국 감옥에 넣습니다. 여기서 해리 보슈의 안타고니트스는 단순히 악당 뿐 아니라, 법망을 이용하는 얄미운 변호사, 그리고 융통성 없는 법과 엘리트입니다.

우리나라 고전 영화인 <투캅스> 같은 영화가 보여주는 공식도 이러합니다. 합리적 이성을 오히려 불신하고. 다시 원시적 폭력과 미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초능력과 주술, 마법까지 추리의 대상으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사이코메트리, 심리학(멘탈리스트)같은 작품들이요. 무당과 함께 추리하는 <극비수사> 같은 작품까지 나오기도 하니, 이제 추리소설의 틀과 경계는 범인이 있고, 탐정과 조수가 해당 범인을 찾아낸다는 아주 근원적 요소만 남긴 채 ‘이성 숭배’ 자체는 사라져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웹소설에서는 이 미스터리 장르가 어떻게 등장했을까요? 영화감독 김영탁의 첫 소설 데뷔작, 『곰탕』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는 국내 최대의 웹소설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된 SF 미스터리 스릴러물입니다. 50만 명이 읽었고, 3만부가 넘게 팔렸죠. 이 작품은 완벽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고 감정에 휘둘리며 마음에 구멍이 있는 한 평범한 주인공을 통해 이 세계의 비밀이 드러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영화감독 출신답게 블록버스터적인 세계관이 설계되어 있는 것도 매력이죠.

책으로 출판된 정통 추리소설만으로 한정하지 않을 경우, 미스터리적 기법은 언제나 대중적으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유명 웹툰 작가인 강풀의 ‘미스터리 심리 썰렁물’의 인기를 보아도 확인할 수 있고, 네이버의 최고 로맨스 인기작인 『치즈 인더 트랩』도 미스터리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죠. 서양판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한 『트와일라잇』 원작에도 미스터리 기법이 활용되었습니다.

또한『판사 이한영』이나 『우리 지검 평검사는 최대형량』 등의 웹소설이 보여주는 지점들은 이미 같은 형식이 대중적으로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만화책 『명탐정 코난』 과 같이 가벼운 트릭과 연속되는 옴니버스성 서사를 통해서 독자들이 트릭 자체의 엄정성에 집중하기보다는 흥미를 끄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가벼운 추리들로 풀어내고, 그 과정에서 치안이 유지되고 범죄자가 처벌을 받는다는 뚜렷한 규칙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이죠. 독자들은 매번 같은 기대를 하고, 같은 기대가 충족되는 것을 즐기며 작품을 따라옵니다. 역시 사이버펑크 세계관에서 초법적인 보안관을 내세워 미래 세계에서 수사를 펼치는 『사상 최강의 보안관』 같은 웹소설들도 미스터리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할 수 있지요.

웹소설 플랫폼에서 정통 19세기적 추리소설 작품들은 당장 잘 보이지 않지만, 위에 사례를 보듯이, 많은 작품들이 독자의 흥미를 끌어들이는 장치로 미스터리적 기법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또한 작품 전체를 봤을 때는 그런 장르가 아니더라도, 장편 웹소설의 몇몇 회차에는 정통 추리 기법을 그대로 쓰기도 하죠.

어떤 사람들은 현대에 와서 정통 추리물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추리물이 미스터리 장르가 되면서, 즉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명확한 형식으로 제련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이성 숭배에서 벗어나 인간 세계의 부조리함, 입체적인 탐정과 범인의 캐릭터,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는 롤플레잉의 미학, 원시적인 힘의 회복을 통한 카타르시스, 그리고 다른 장르의 서브 장르로서도 드러납니다. 어쩌면 미스터리 장르는 더욱 다양하고 풍부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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