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SF 담론(이융희, 전혜정)

1. 장르 SF란 무엇인가?

장르 이론가들은 각각 장르를 설명할 때 첫 시작이 정해져 있습니다. 판타지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환상과 장르 판타지 라는 것은 다른 겁니다.”이며 로맨스는 “모든 사랑이 로맨스는 아니예요.”입니다. 그리고 SF는 “여러분. SF는 공상과학이 아니라 과학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을 통해 관념을 전달하는 장르예요.”라고 할 수 있겠네요.

SF가 가지고 있는 ‘공상’이라는 단어를 벗겨내기 위해서 우리는 한 편의 소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소설 첫 장면부터요. 한 사람의 평생의 보금자리가 무능하고 불친절한 행정명령을 통해 철거되기 시작합니다. ‘아서’라는 캐릭터의 집이었죠. 그는 중장비 앞에 누워있는 것 외엔 그 어떤 정당한 법적 항거의 수단이 없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우주 속에서 ‘지구’가 철거되어 지구인들이 멸망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역시 무능하고 불친절한 우주적 행정명령을 통해서요.

이렇게 지구의 흔한 사건을 우주 단위로 확장함으로써, 지구 안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실은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불합리한지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거리를 벌려서 관찰하기 힘드니까요.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들로 받아들여버리거든요.

1945년 작품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한 번 생각해봅시다. 인간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아이러니함을 동물세계로 은유하여 풍자했던 작품입니다. 인간 사회가 얼마나 어리석고 불합리한지, 거기에 속한 우리 스스로는 잘 알기 어렵죠. 그러나 관찰의 거리를 벌리고 한 발 떨어져 어리석은 동물들의 세계를 바라볼 때, 경멸과 허무 등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통찰이 발생하죠. 이런 감정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조지 오웰은 동물 세계를 끌어온 것입니다.

SF 역시 관찰의 거리와 각도를 바꾸는 작품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의 세계를 바라보며 반복된 사건들에 무뎌져 있던 관점을 뒤집으며 의미가 발생합니다. 관찰의 시선을 우주적으로 확장하거나, 기술적으로 관찰의 각도를 틀어놓습니다. <동물농장>이 동물들이 살고 있는 농장이라는 우화적 세계관을 만들어 관찰의 거리를 벌렸듯이, SF 역시 인간 사회의 거울로서의 세계관을 구축하되 그 바탕에 과학적 상상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SF의 ‘과학적 상상력’은 단순히 미래의 기술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을 비평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됩니다.

물론 사람들 간에 ‘과학이 무엇이냐’ 하는 인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인식이 다른 탓에 명명백백하고 뚜렷한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하드 SF’만이 진정한 SF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는 기술적 모험서사인 스페이스 오페라까지 SF 범주에 모두 포함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좋은 SF 작품은 하드 SF이든 스페이스 오페라든, 인간 세계를 비추고 은유하는 ‘거리 벌리기’가 시도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 SF의 의의를 ‘과학적 사실성’이나, ‘기술적 경이성’이라고만 생각한다면 SF의 주요 역할인 ‘거리 벌리기’가 필연적으로 약해지겠죠.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SF를 왜 공상과학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요? SF를 번역할 때 공상과학으로 흔히 번역하곤 했는데, 공상은 ‘현실의 실현 가능성이 없고 허무맹랑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증과학의 영역에서 재현될 수는 없지만 과학적 사고, 즉 논리적인 추론을 바탕으로 언젠간 미래에 도래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SF, 과학소설이라면, 이 둘은 결코 서로 함께 붙을 수 없는 모순형용의 단어가 될 것입니다.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명칭이 일반화된 것은 과거 미국의 잡지 이름인 The Magazine of Fantsy & Science Fiction의 번역 실수로 일어난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SF는 공상과학이 아닙니다.

그럼 세계 최초의 SF 소설은 과연 무엇일까요. 보통 이론가들은 메리 셸리Mary Shelley작가의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을 세계 최초의 SF 소설로 보곤 합니다. 고딕 호러의 시초 작품이기도 한『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은 1818년 런던에 익명 출판 이후 1823년 재판되었지요. 인간이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시체를 조합해 만들어낸 한 괴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다가 그를 창조한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해 돌아온다는 내용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출판 이후 보편화된 과학소설의 출간은 ‘SF’ 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합니다.

SF라는 단어는, 이 작품 이후 1851년 윌리엄 윌슨의 『아주 오래된 주제들에 대한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A Little Earnest Book upon a Great Old Subject)』에서 최초로 등장합니다. 윌리엄 윌슨은 “과학으로 인해 드러난 진리들이 본래 시적이고 진실한, 즐거운 이야기와 서로 얽히고설킨 것이 과학소설이다.”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렇다면 왜 시체가 걸어다니고 생각하고 말하는 『프랑켄슈타인』이 판타지 호러가 아니라 SF 호러 작품이 된 것일까요. 이것은 『프랑켄슈타인』이 당대의 과학지식인 갈비니즘Galanism에 기반되어 논리적 근거를 갖고 과학적 추론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갈바니즘이란 이탈리아의 생리학자 갈바니의 실험에서 비롯된 이론으로 죽은 개구리 뒷다리에 칼을 대니 개구리가 경련. 생체 전기가 동물 속에 있다는 가설 속에서 이루어진 실험들입니다. 물론 갈바니즘 자체는 지금은 기각되었지만, 당대에는 합리의 영역에 속해있던 엄연한 과학이었습니다. 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추론을 통해, 신체를 조합해내면 생명을 창조한다는 설정 아래 인간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인간이 과학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핸 질문까지 던진 작품이 『프랑켄슈타인』입니다.

갈바니의 실험

그렇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은 판타지가 아니라 SF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창작이라고 할 수 있고, SF평론가 복도훈은 SF를 “미래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가능한 관념을 일관되게 제시하려는 문학”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SF에서 말하는 ‘개연성’이란, 단순히 ‘과학적 사실성’에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를 굴러가게 만드는 독창적인 규칙이 일관되게 제시되고 있느냐’에서 구축됩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가능한 관념을 일관되게 제시하려는 것은 사고실험이라는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사고실험의 대표적인 장르로는 ‘좀비물’이 있고, 비슷한 형식의 소설로는 『눈먼 자들의 도시』이 있겠네요. 이 두 시대는 핵전쟁, 또는 생체병기로 인해 한 차례 무너지고 멸망한 시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해서 작품을 통해 한 차례 실험을 가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현실을 배경으로 하거나 전혀 과학적이지 않을 것 같은 작품들 역시 사고를 기반으로 한 세계의 모델 구축, 진행이라는 면에서 SF의 하위장르로 그 범주를 확장해 나갑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봇 3원칙도 사고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요약하면 로봇은 인간을 절대 해쳐선 안 되고, 또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며, 다만 인간을 구해야 할 경우에는 스스로를 해칠 수 있다는 원칙인데요. 이는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1941년 단편 Liar!에 처음 소개되었던 것인데, 이후 로봇이 등장하는 많은 작품 및 실제 로봇 과학에 영향을 줍니다. 이런 것이 사고 실험인 것이지요. 많은 SF작가들이 훗날 미래학자가 되는 것을 보면, SF의 사고실험이 우리가 미래를 대비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직/간접적인 영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한국 SF의 계보

한국에서 SF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07년 <태극학보>에 실린 『해저여행기담(海底旅行奇譚)』으로부터입니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번역한 것이었죠. 한국인 일본 유학생 그룹인 태극학회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태극학보>에서는 과학기술을 근대의 한국에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서양의 SF 소설을 번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존의 체제(성리학, 유교)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구 서구 신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이를 통해 그들이 도달하려는 목적은 애국계몽이었습니다.

<태극학보>에 실린 『해저여행기담』

1960년대. 과학소설의 장려가 이루어지면서 1962년 한낙원 작가의 『금성 탐험대』 등이 출간되었고,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독서 교육이 확대됩니다. 이 과정에서 1975년 『한국과학소설전집』이 발간됩니다. 『한국과학소설전집』은 1969년부터 청소년 과학전문잡지인 <학생과학>에 연재되던 작품을 모은 것인데, 로맨스, 추리, 모험소설 등의 플롯을 활용, 변용하는 방식. 대부분의 작품이 도식화된 한계가 있었습니다.

1907년부터 1975년까지의 SF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두 출간에서 공통적으로 과학을 ‘기술’, 그러니까 만들어지는 발명품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근대적 과학 인식은 오랫동안 제자리에서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작품들 사이에서도 좋은 SF의 계보를 드러내는 작품은 존재했습니다. 1967년 출간된 문윤성 작가의 『완전사회』는 1965년 <주간한국>에서 주관한 제1회 추리소설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해서 깊이 있는 서사로 다루는 시도는 한 차례 존재했었지요.

“인간 사회의 영원한 꿈. 전쟁 없고 배고픔 없고 두려움 없는 사회. 따스한 사랑과 즐거움이 그득한 사회. 이러한 사회, 이른바 완전사회를 바라는 건 한낱 허황된 꿈일까. 어찌 생각하면 꿈으로만 돌릴 게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의 온갖 사물은 날로 진보 발전하고 있나니, 사회기구와 사회 조직의 완전화도 바랄 수 있지 않겠는가.” – 『완전사회』 머리말

그러나 완전사회는 당시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는 못 하고 한 차례 반짝하는 것으로 수명을 마치고 맙니다.

현대에 와서는 1988년 복거일 작가가 <비명을 찾아서>라는 대체역사 소설을 SF의 하위장르라고 선언하며 장르적인 SF 작품을 출간한 이후 듀나, 김보영, 정소연, 정보라, 배명훈, 김창규 등의 한국 SF 작가들이 약진하며 다수의 작품을 창작합니다. 이후 한국 SF 협회, 과학소설작가연대 등 다양한 모임이 발족되었고 SF 어워드, 한낙원 과학소설상, 과학문학상 등, 수많은 SF 작품 공모전이 열리게 되며, 이후 SF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행사인 SF 컨벤션이나, 종합 장르 플랫폼인 브릿G 등이 탄생하면서 현재 SF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3. 현대의 SF, 그리고 웹소설

이제 SF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만을 다룬다고 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2016년 알파고의 탄생과, 2016년 호시 신이치 문학상의 1차 심사를 통과한 AI 소설을 생각해보세요. 인공지능과 과학적 미래는 이제 현실에 구현되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미래의 인식과 미래의 윤리를 점검하기 위해서라도 SF 작품의 중요성은 더욱 대두되었지요.

SF는 트롤리 딜레마부터 포스트 휴먼 담론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에 앞장서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와 거리에 대해서 윤리적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이것은 이제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화려한 기술을 바탕으로 구현되는 영화는 이제 현실에서 수많은 미래의 모습들을 구현해내기 시작했고, VR이나 AR 같은 가상현실의 기술들은 이제 가상의 그래픽과 함께 살아가는 현실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이제 SF는 미래세계에 대한 과학을 다루는 것이 아닌, 현실의 윤리적 문제를 살펴보는 픽션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시작합니다.

한편 웹소설은 SF를 어떻게 담고 있을까요? 최근 웹소설에서는 ‘게임소설’이나 ‘후원시스템’ 등이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 라이트노벨인 『소드 아트 온라인』의 경우엔, 게임 속 가상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주인공의 투쟁을 다루는 이야기로, 엄연한 SF가 될 것입니다. 웹소설도 『소드 아트 온라인』과 비슷한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약물이나 기계를 통해 타임 슬립을 하거나, 머릿속에 UI 창이 뜬다는 설정 등도 이미 수없이 등장한 설정이지요.

물론 타임슬립을 하거나 온라인 게임 속 세계로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다 SF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도 있습니다. 들어간 게임이 중세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거나, 그저 게임의 일부 시스템을 주인공이 편리하게 이용한다는 일명 ‘사이다물’로만 작동하는, 미래적 관점을 제공하기 어려운 경우도 아주 많거든요.

그러나 저는 문피아 등에서 연재되고 있는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현재 가장 인기가 높은 웹소설을 하나 예를 들어볼까 합니다. 이 작품은 한 캐릭터가,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한 웹소설 속 세계관 속에 빠진다는 내용입니다. 유튜브나 트위치, 아프리카에서 실제로 하고 있는 1인 방송 시스템처럼, 주인공의 목숨 건 모험을 초월적 존재들이 방송 보듯 지켜보며 후원을 해주죠. 이렇게 지켜보는 초월적 존재들을 ‘성좌’라고 부르며, 이런 후원 시스템을 웹소설에서는 ‘성좌물’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을 SF로 보지 않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실제로 웹소설에서 이 작품을 ‘현대판타지’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빠져 있는 작품의 세계를 생각해봅시다. 이미 모든 문명이 붕괴된 세계로서, 즉 SF계에서 사고실험을 통해 수없이 시도되었던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죽고 죽이며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칩니다. 원작 웹소설을 경전으로 삼는 광신적 종교도 생겨납니다. 게임 속 몬스터처럼 설계된 크리처들을 상대하며 게임적 지식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단순히 소재로서가 아닌, 이러한 세계관은 SF적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전통적인 SF적인 설정을 충실히 따르는 웹소설들은 아직까지 다소 적은 비율이지만, 그 안에서도 걸작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SF를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하면 아주 많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상 최강의 보안관』은 전통적인 의미의 SF 정의를 충실히 따르고 있으면서도 웹소설의 장점을 모두 가졌다고 평가받는 소설입니다.

또한 웸소설 로맨스 장르에 SF적 설정이 늘고 있는 것도 주지할 만한 현상입니다. 웹소설에 SF적 잠재력이 높다는 뜻이지요. 특히 성좌물처럼 1인 방송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설정은, 웹소설이 그 어떤 문학보다도 빠르게 당장의 현재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여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의 웹소설이 구축한 이 플랫폼 문학과 SF라는 장르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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