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혐오에는 인과가 없다

혐오는 현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키워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혐오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고 사용하지만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혐오를 단순한 미움이나 시기, 질투와 같은 것처럼 ‘싫어하는’ 감정인 것으로 이해한다. 사실 혐오는 보다 복잡한 의미를 갖는다. 혐오는 구조와 맞닿은 단어다. 그 속에는 불균형과 차별, 분노와 공포 등이 섞여 있다.

즉 혐오는 개인 또는 집단이 누군가를 단순히 좋아한다, 싫어한다의 호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잘못 이해하고 차별하고, 오해하고 싫어하는 과정이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사회나 국가 또는 관습 등의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을 일컫는다. 사회에 떠도는 혐오단어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용어들은 개인을 모욕하려는 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색, 정치적 신념, 역사적 사건이나 성별처럼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 틀에서 탄생하지 않았나.

그래서 혐오는 쉽게 경제논리 속에 편입된다. 개인의 취향보다도 더 강력하게 자본의 이동을 만들어낸다. 내가 혐오하는 자들을 공격하는 것이라면 쉽게 돈을 지불하고, 혐오당하는 나를 극복하기 위한 연대로서도 쉽게 돈을 지불한다. 더 많은 돈을 쓰는 쪽이 혐오라는 구조를 깰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이 지배한다. ‘혐오경제’라고 해서 혐오를 둘러싼 문화를 표현하는 용어까지 생겼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자본의 움직임을 규명하기 위해, 그리고 사회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혐오의 인과를 규명하려고 한다. 왜 혐오범죄가 일어나는가. 왜 혐오 콘텐츠가 소비되는가. 그러나 이러한 인과의 규명이 어긋날 때가 있다. 한 개인이나 집단에서 혐오가 발생하는 순간이나 과정을 찾는 것에서 벗어나 혐오로 촉발된 개별 사건과 인간관계까지 인과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혐오가 발생하는 것과 그 혐오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악마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별개의 구조 속에 있다. 오히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혐오로 일어나는 일들은 부조리한 것이고 불가해한 경우가 많다.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악의(惡意)>라는 소설은 그 예시를 잘 보여준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죽음과 고스트라이터의 관계를 다룬 소설인데,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살인범이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동기를 끊임없이 파고드는 형사가 이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깊디깊은 악의’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 것이다. 여기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죽일 만한 동기가 있었기에 죽인 거라는 기존 추리소설의 틀은 무너진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의는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라는 문장으로 표현된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등의 ‘알 수 없음’을 공포의 대상으로 놔두는 것도 그 맥락의 ‘알 수 없음’이 두렵기 때문 아닌가.

이건 비단 소설 속 이야기는 아니다. 10월 한 달 동안 우리는 수많은 혐오 관련 사건을 목격했다. 누군가는 혐오를 인터넷에서 악플이나 싸움 등으로 표출했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혐오 콘텐츠를 양산하며 유튜브를 찍고 카드뉴스를 만들고 기사를 썼다. 누군가는 묵묵히 침묵했을 수도 있고, 그중 몇몇은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행동은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에 인과의 잣대를 들이밀면 개개인의 도덕과 윤리는 소멸하고 만다. ‘걔는 비난받을 만해’ 또는 ‘그 집단은 당연히 조롱당해도 돼’라는 문장으로 쉽사리 양비론이 생겨나고, 이러한 명제가 비도덕 행위를 자기위안하며 끊임없이 혐오의 동력을 유지한다. 자신이 갖는 혐오가 왜 생겨났는지, 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으니, 그 이유를 소급적으로 채우려 한다.

물론 이해하기 힘든 행위를 저지르는 개인 역시도 사회가 만들어내는 악마 또는 병리적 증상일지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영역을 전부 섬세하게 분리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혐오와 개인과 경제와 사회를 합쳐 단순명료한 인과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그저 현 상태를 이해했다고 믿기 위한 가벼운 봉합에 지나지 않는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1062051015&code=990100#csidxa49ec4f0a0d7538bb30325f21b861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