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무협 담론(이융희, 전혜정)

1. 장르무협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무협이라는 장르를 제대로 알기 위해 유용한 방법 중 하나는, 유행했던 홍콩 영화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 중국에서 유행했다는 ‘무협’ 장르를 이해하기 위해서 홍콩의 영화를 보지? 하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를 전후해 무협에 대한 관심이 시들했고, 그 관심을 가져와 무협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온 것은 홍콩과 대만이었기 때문이죠.

이 시기에 김용, 양우생, 고룡이라는 걸출한 작가들이 무협(武俠)이라는 장르를 발전시켜왔습니다. 무협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라도 『영웅문』이라는 제목은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국내 고려원이라는 출판사가 김용의 대표적인 3부작 무협 소설인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해적판으로 발간한 것입니다. 이 전집으로 한국의 무협 시장이 확장되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무협이라는 장르는 쉽게 말해 무武로서 협俠을 펼치는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무는 장르의 소재고 협은 장르의 정신이다”라고 이야기하곤 하지요. 여기서 말하는 ‘협’이란 현대의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명예’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장르 무협의 기원은 어디서부터일까요? 보통 무협의 기원은 사마천의 『사기』 자객열전(刺客列傳)부터 찾곤 합니다. 자객열전은 섭정이 엄중자의 원수인 한나라 재상 협루를 죽이는 이야기로, 섭정과 섭정 누나의 죽음을 다루는, 협의와 비극의 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시대가 지나면 무협의 원류로 시내암의 <수호전>이 나오게 됩니다. 수호전은 삼국지, 홍루몽, 서유기와 함께 중국 사대 기서 중 하나로 수많은 종류의 무술이 등장하는 협객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지요.

물론 이러한 작품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나 소설 속 ‘무협’의 장르와 차이가 있지요. 이것은 중국에서 무협을 바라볼 때, 자국의 문화를 바라볼 때 생기는 우호적인 시선의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봅니다. 량셔우쭝의 저서 『강호를 건너 무협의 숲을 거닐다』에서 보면 서향의 기사도 문학들까지도 “서양의 무협”이라고 할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판타지 차시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어떤 장르에 대한 비평이 의미가 있으려면 인접 장르를 모두 포함시켜서는 곤란합니다. 비평의 툴이 무화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무협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선 무협에 대한 정의를 조금 더 정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무협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위해서 우리는 무협의 계보를 먼저 짚어보려고 합니다. 무협은 당나라 시대의 전기-송나라 시대의 화본과 필기-명나라 시대의 장․단편 백화 무협소설-청나라 시대의 ‘협의’ 공안소설-협객의 미덕을 갖춘 명․청 시대의 무협-20세기 초반의 남․북파 무협소설의 방식으로 진화해왔습니다.

  1. 당나라 시대의 전기
  2. 송나라 시대의 화본과 필기
  3. 명나라 시대의 장단편 백화 무협소설
  4. 청나라 시대의 ‘협의’ 공안소설
  5. 명·청 시대의 협객의 미덕을 갖춘 무협
  6. 20세기 초반 남북파 무협소설

이것이 앞서 이야기했듯 홍콩과 대만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1950년. 중국에서는 무협 소설이 쇠락하고 홍콩에서 새로운 번영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때 무협소설은 구소설의 진부한 언어를 털어내고 해외의 문예 수법을 구사하며 무협, 역사, 애정 세 요소의 결합한 방식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이때 등장한 작가들이 김용, 양우생입니다. 이 둘은 홍콩 무협의 양대 산맥이라고 칭할 수 있는 작가들이고 국내에서도 이들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어서 들어왔지요. 무협은 낡은 것이라고 여겼던 기존의 인식을 깨고 젊은 세대들이 무협에 관심을 갖게 하도록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홍콩의 유행이 1960년대 대만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고룡이 추리적 요소를 가미한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곧 김용, 양우생, 고룡으로 무협소설의 삼두마차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죠. 이러한 관심은 다양한 무협 소설의 창작으로 이어져 소일, 와룡생, 사마령, 제갈청운, 동방옥, 온서안, 주우 등의 작가를 양성하는데 기여합니다.

천안문 사태 이후 10년 뒤, 중국은 개혁 개방정책을 실행했고 홍콩 신파 무협소설이 열풍을 일으킵니다. 1980년 중․후반 대만의 고룡이 수입되며 중국에서 다시금 무협의 계보를 이어가기 시작합니다.

2. 한국 무협의 고민들

그럼 중국에서 한국으로 무협의 중심을 옮겨오겠습니다. 서울대의 전형준 선생님이 쓴 『한국무협소설의 작가와 작품』에서 보면 한 중국의 문학평론가가 등장합니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죠.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중국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무협소설이 한국인에 의해 창작되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한국 무협소설이 되는 것인가. 설사 그것을 한국 무협소설이라고 부른다 해도 거기에 무슨 대단한 문화적 의미가 있겠는가?”

앞서 중국에서 이야기되는 무협의 의미와 우리나라에서 바라보는 무협의 의미가 다르단 소리를 했지요. 한국의 무협은 1960년대 故 김광주 『정협지』와 『비호』가 최초의 번안 무협소설로 나온 이후 짧은 내용의 소설을 길게 덧붙여 창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요. 이후로 홍콩, 대만 무협의 다량 수입되었고, 동시에 한국의 신인 작가들이 이러한 홍콩/대만의 무협작가 필명을 이용해 데뷔합니다. 워룽성(와룡생)이라는 필명이 대표적입니다.

79년에 역시 와룡생이란 필명으로 『팔만사천검법』을 썼던 을재상인은 그 이름을 떼고, 『속팔만사천검법』을 창작합니다. 이것을 한국 창작 무협의 중요한 분기로 봅니다. 80년 대에는 한국의 창작 무협이 더욱 활기를 띠는 것처럼 보입니다. 88년에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금강의 『발해의 혼』도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무협으로 인기를 끌었죠. 사마달, 용대운, 야설록, 서효원도 이 시기에 창작 무협의 계보를 이끄는 주요한 작가입니다.

긴 서사를 거부하고 빠른 속도감을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미소년 형태의 주인공이 등장했습니다. 대여점에서 빠르게 소비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중국의 의협 개념을 말하는 ‘정과 사’라는 개념을 반대하는 경우도 많았구요. 이처럼 한국 무협은 중국의 평론가가 말한 그 ‘한국적 무협’을 위해서 한국적 정서와 서사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행도 오래 가질 못 합니다. 1세대 무협의 문제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인데요. 아까 말했던, 대부분의 한국인 창작자가 해외의 작가 워룽성(와룡생)의 이름으로 출간을 하다 보니 작가로서의 의식 결여되고 표절을 기본으로 하게 되었다는 거죠. 특히 사마달 작가는 이중 계약이라는 악수를 두어 작가 생활이 힘들어지고 결국 만화 스토리작가로의 전업하게 됩니다. 이러한 악수들이 쌓이고 쌓여 80년대 말부터 무협 소설이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아까 말했던 김용의 영웅문은 86년에 출간된 것으로서, 무협이 인기를 끌던 시기이자, 쇠락의 징조가 나타나던 시기의 작품으로, 이 작품도 이례적인 성공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때 침체되었던 무협이 다시금 살아난 것은 도서출판 ‘뫼’ 사단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초기 무협소설 작가 중 한 명이었던 야설록이 만든 도서출판 ‘뫼’으로, 이곳에는 용대운, 좌백, 설봉, 장경, 이재일, 진산, 백운상, 석송, 정진인, 운중행, 임준욱, 백야 등의 작가들이 몰려들었지요. 이들은 PC통신에서 현실적이고 고증을 위주로 한 무협을 창작하는 것이 특징이었으며 특히 1세대의 악습을 벗어던지고자 열중하였습니다. 이후 PC통신 시장에서는 인기 판타지소설『드래곤 라자』가 등장했고 상대적으로 짧은 무협의 서사를 보며 작가들은 유행하는 판타지의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독자와의 융합을 시도합니다. 캐주얼하지만 정통 무협의 장점을 다 가졌던 전동조의 『묵향』 등이 좋은 예이죠. 퓨전 무협으로 불리는 새로운 형상의 무협이 등장하며 중국과 뚜렷이 구분되는 한국적 무협의 형상이 완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3. 현대의 무림, 그리고 웹소설

무협의 정의 중 우리가 ‘협俠’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협’은 단순히 절대적인 정의로움이 아니라 질서를 만들기 위한 힘입니다. 이를테면 정복전쟁을 계속하던 중세 기사들을 다루기 위해서 ‘기사도’라는 예의범절 규정을 만든 것처럼요. 그들이 수호하는 것은 세계의 법칙과 질서, 치안이 아니라 그들이 소속된 이데올로기적 가치였지요. 흔히 무협에서의 정파에게 요구되는 가치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들이 거부했다는 ‘정과 사’의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과 사의 이분법은 사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이 아니라 중화인민사상과 외세의 이분법, 즉 당연히 따라야하는 절대적 규칙과 나머지를 나누는 이분법입니다. 무협을 좀 보신 분들은 정파와 사파라는 개념을 아실 것입니다. ‘동사서독 남제북개’라는 말도요. 동사서독 남제북개는 김용이 만든 세계관이긴 합니다만, 정파와 사파를 분리하여 친황이냐 아니냐를 따진 중국인들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동사와 서독은 중앙의 황제와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사파적 사람이고, 북쪽의 개방과 남쪽 연나라는 중앙의 황제와 연합된 정파적 집단입니다. 그 외에도 소림사, 무당파, 화산파, 아미파, 곤륜파 등은 정도를 걷고 협을 지키는 정파 집단이라는 설정 등이 무협에선 마치 상식처럼 받아들여질 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분법, 이러한 구조의 폭력은 한국에서 제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이기도 했지요. 또한, 무협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처럼 요구되었던 이러한 세계관은, 새로운 젊은 작가들에게는 허들로 작용했습니다. 많은 학습이 필요하니까요. 일부 이러한 엄격성을 요구하는 작가 및 독자들의 태도는 무협 장르 자체의 확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한국의 무협 작가들은 이런 정사 개념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현대의 무협에서는 정의로움, 협의는 점차 ‘사이다’라고 말하는 구조로 변화해갑니다. 누군가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고, 그 불쾌감을 사적인 복수로 해결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이데올로기 바깥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을 주목합니다. 화려한 무술보다는 단순하고 직선적인 행동이 더 많이 나오고, 유행하게 되었지요. 중앙의 황제 같은 것과는 관계가 없는 말하자면 독립적인 개인, 근대적 개인의 등장입니다. 그리고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그 ‘누군가’는 보통은 거대한 집단, 조직, 세계입니다.

그렇다보니 정통 무협의 클리셰적인 설정인 무림이라는 구조, 9파 1방과 세외, 사대 가문 등의 형태도 현대의 무림에서는 변화되어 나타납니다. 무림武林이란 무협 소설의 세계를 말하는 용어로, 무협이라는 공간을 그 시대의 중국답게 보여주는 구조인데요, 이러한 구조 속에서 주인공들은 가문의 복수나 문파의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중국식 정통 무협이었죠.

그러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한국 작가들은 개인보다도 더 우선시되는 거대한 구조, 이데올로기를 고민했고 이는 흔히 말하는 #갑질 #대기업 #가족 #조폭 등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개인과 구조의 소속 또는 대립, 그 구조는 매우 한국적인 소재와 주제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겠죠. 이것이 현대 한국 무협의 무림입니다. 개인적 가치관으로서의 협이, 사이다적 방식으로서의 무를 써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세계관인 것입니다. 현대의 무협 콘텐츠들이 이렇게 변화되어 간 것도 한국을 반영하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는 웹소설까지 포함되는 이야기입니다. 현대 웹소설의 근간엔 종이책 시절의 장르소설이 있었고, 그 장르소설의 상업 공식을 보편화한 무협소설의 양식은 웹소설까지 꾸준히 이어져와 마치 ‘웹소설’의 공식인 것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99년 정과리 문학평론가가 판타지 소설을 비평할 때 “무협의 외피에 서구적인 형태만 끼얹었다”라며 맹렬한 비난을 했을 때 이미 진단되었듯, 무협은 이미 장르전반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경향이 웹소설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판타지 소설의 형식이나 현대 웹소설의 형식 중에서도 ‘독고구검’이나 ‘1성, 2성’ 같은 주요 핵심 소재들은 과거 무협에서부터 연계된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네이버 웹소설에서 연재되는 소설 중에서 무협 소설이 런칭되기도 했고, 장영훈 작가의 ‘칼든 자들의 도시’나 유진성 작가의 ‘칼에 취한 밤을 걷다’, 한중월야 작가님의 ‘나노마신’이나 ‘절대검감’ 같은 작품들은 현대 웹소설에서도 잘 적응한 무협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 웹소설 수익을 놓고 보았을 때에도 단일 작품의 수익은 현대 판타지 소설이나 로판이 베스트셀러이지만, 작가 수익으로 보았을 경우는 무협 작가가 1등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무협의 맥은 웹소설 시장에서 단일 브랜드로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점들을 정확히 안다면 조금 더 다양한 방식으로 웹소설을 이해하고 창작할 수 있는 활용법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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