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사실 부재의 사회

10월 마지막 주 모 영상 플랫폼에서는 술에 취한 두 스트리머 간의 난투극(‘현피’ 사건)이 라이브로 생중계됐다. 한 사람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이어진 싸움은 즉시 gif 그림파일로 저장돼 인터넷 세상에 뿌려졌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방송의 자격론과 윤리가 호출되며, 규제 없이 방송하는 개인들의 수위가 나날이 자극적으로 된다며 이러한 방송을 저지할 수 있는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10년 전부터 꾸준히 반복된 낡은 이야기다. 공중파에서 스트리밍 방송 시스템을 빌려 송출자와 시청자의 거리를 좁히고, 실제 셀러브리티를 데려와 방송 출연을 시키는 세상에서 이러한 담론은 고리타분하고, 무용하다.

우리가 좀더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그 문화 저변이 어떤 동력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인식과 그 여파다. 주목할 것은 ‘현피’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gif라는 파편으로 잘라 밈(Meme)화시켜 공유하고 웃고 떠들며 즐기는 문화 자체, 그리고 그렇게 현실을 밈화해서 떠드는 동안 파고든 사실 불신의 미래다. 밈은 리처드 도킨스가 문화의 진화를 설명하며 제시한 개념이다. 특정 집단에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최소단위를 이야기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렇게 어려운 이론설명보다 ‘짤방’으로 알려져 있다. 짤방은 특정 세대 또는 집단의 문화적 유행이 그림파일 등으로 유포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데 드라마 <야인시대>의 김두한(김영철 분) 캐릭터가 “4딸라!”를 외치는 모습이나 최근 <타짜>의 곽철용(김응수 분)의 대사들이 그러한 사례다. 그들의 유쾌한 대사는 패러디를 양산하고 현실의 문화들에 균열을 낸다.

가상 캐릭터들과 현실의 폭행 사건이 인터넷 공간 속에서 동일하게 밈화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물화(物化)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물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매매의 대상이 되며, 인간의 노동력이나 다른 능력, 심지어 인간과 인간의 관계 자체도 물(物)과 물(物)의 관계처럼 변화됨을 뜻한다. 앞서 이야기한 스트리머의 폭력을 살펴보자. 그것은 인터넷 방송이라는 공간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상품으로 변화한 것인데, 여기에 밈이라는 영역이 합쳐지면 단순히 현실이 물화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이 가상의 영역에서 문화상품화된다.

즉, 스트리밍 방송 속에서 싸우는 사람은 실제의 사람이고, 실제 사건이지만, 그것이 짤방화되는 그 순간 실제의 사람은 소멸하고 가상의 복제체인 밈만 남는다. 사람들은 실제 사건이 일어났는지 안 일어났는지는 관심 없고 폭력 그 자체, 자극 자체만 존재하는 일종의 환영체, 팬텀(Phantom)으로만 소비하는 것이다.

밈으로 소통하고 복제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이제 ‘사실’을 믿지 않는다. 조작과 거짓, 선동과 날조 속에서 날아오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순진하고 나이브한 것이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팩트’에 집착하고 사건에 대한 싸구려 신파적 감성에서 떨어져 나와 기계적 중립을 외치며 타자를 자처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확증편향적으로 믿고, 자신이 믿으면 그것이 팩트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에서만 일어나는 단일적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전 세계적인 사건이나 사회·정치의 단면들조차 쉽게 짤방화하고 유희화하지 않나. 수많은 가짜뉴스 생산자들이 활개칠 수 있는 까닭도 이러하다. 정치적 영역에서부터 이미 무엇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생각이 없는 자들이 그것을 사실이라 믿고 소비하며, 현실 사회를 끊임없이 가상의 시공간으로 변화시킨다.

물론 이러한 사실 불신의 사회를 모조리 ‘인터넷의 밈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단지 오늘, 조금 더 주목해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이 몇 년 사이에 어떻게 변화했는지. 왜 우리는 팩트에 주목하면서 현실을 가상처럼 소비하고, 그 어떤 사실도 거짓이라 전제하고 받아들이면서, 수많은 가짜들을 사실로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그 바깥에서 그 모든 과정을 웃고 즐기는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092040005&code=990100#csidx9d5fd6875ef62db917697f9aa06f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