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상문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종종 비사실적인 무언가를 다루는 모든 이야기를 다 ‘환상문학’으로 번역하는 경우를 봅니다. 장르물로서의 판타지는 물론, 동화나 신화나 기담류 등등을 포함해서 말이지요. ‘판타지’라는 단어를 일반 생활어로만 생각하면, ‘공상’, ‘상상’ ‘환상’ 등 아주 넓은 의미로 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환상’을 ‘현실세계에 불가능한 사건이나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넓게 정의한다면, 동서양의 고대 신화, 서사시, 근현대의 과학소설 등등 비사실주의적 문학을 다 포함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포괄적인 인식은 비평 작업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기 쉽죠.
‘환상문학’을 알기 위해서는 비평 용어로서의 ‘환상’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이론가들이 환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설명했지만, 이 수업에서는 츠베탕 토도로프의 정의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환상문학 장르를 문학적 관점으로 체계적으로 정립한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환상문학에서 말하는 환상적이란 것은, 자연 법칙만을 알고 있는 한 존재가 겉보기에 초자연적인 사건에 직면하여 경험하는 망설임이다.
즉 요정이나 흡혈귀 등 초자연적인 것이 없는 이 현실세계에 속한 주인공이나 독자 앞에 세계의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침입하고, 그에 대해서 이것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 의심하고 망설이는 것입니다.
망설임이 왜 중요할까요? 독자가 초자연적인 사건을 두고 ‘착각’으로 설명하면서 현실의 법칙에 타격을 입히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이는 환상 장르가 아니라 인접 장르인 ‘기이 장르’가 됩니다. 반대로, 새로운 자연법칙을 가정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이는 ‘경이 장르’에 속하게 됩니다. 또한 이 초자연적인 사건을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방식, 즉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해도 이는 시나 우화 같은 것이 되며 환상 장르가 아닙니다. 즉 망설임과 그 판단을 두고 기이 장르, 환상 장르, 경이 장르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 기이장르: 초자연적인 사건을 두고 ‘착각’으로 설명, 현실의 법칙이 깨지지 않는다.
- 경이장르: 초자연적인 사건을 두고 현실과 다른 새로운 자연법칙을 가정한다.
- 우화: 초자연적인 사건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한다.
이런 기준을 바탕으로 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반지의 제왕’같은 장르판타지는, 환상 장르가 아니라 경이 장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법이나 엘프 등 초자연적인 상황을 두고 주인공이나 독자가 의심하고 망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상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삼지 않고, 초자연성이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세계를 배경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갑자기 벌레로 변한다는 내용의 카프카의 『변신』은 어떤 장르에 속하게 되는 걸까요? 현실과 초자연적 세계가 함께 존재하며 충돌하기는 하기 때문에 환상문학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환상문학은 코스모스의 질서의 세계에서 카오스적 세계로 이행하는 서사구조가 특징인데, 이 작품은 평범한 일상에 초자연적인 사건이 침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거꾸로 서두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초자연적인 사건이 점차적으로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론가에 따라 이를 환상문학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신환상문학’에 포함시키는 이론가들도 있으며, 신환상문학과 환상문학은 같은 것이라고 분류하는 이론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를 자세히 파고드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장르판타지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므로, 이쯤 하도록 하겠습니다.

카프카의 『변신』은, 현실과 초자연적 세계가 충돌하기는 하기 때문에, 환상문학으로 봐도 될지 아닐지 의견이 갈린다.
결국 토도로프 등이 정립한 비평 용어에서의 ‘환상문학’이란, ‘현실적인 법칙의 세계’에서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평범한 주인공’이라는 설정이 중요하게 됩니다. 이러한 ‘환상’은 우리가 말할 장르판타지에서 다루는 ‘환상’과도 같을 수도, 다를 수 있겠죠.
이렇게 환상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개별 작품들을 어떻게 분류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말할 장르판타지를 현재 ‘환상문학’과 큰 구분 없이 사용하고는 있지만, 환상문학 비평 툴을 그대로 이용하여 비평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2. 장르판타지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설명했던 것은 서양문예 사조에서의 환상문학, 환상 장르입니다. 그러나 이는 동양에서 쓰여 온 환상(幻想)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환상문학과 판타지 등의 용어가 혼잡하게 쓰이는 이유는 우리가 동양 문화권에 속해 있는 것과 연관이 없지 않겠죠.
동양의 환상이란 기(奇), 이(異), 괴(怪)를 기준으로 현실과 공존하면서도 다른 것을 뜻합니다. 동양의 질서 그 자체의 연장으로서 환상인 것이지요. 그러나 서양에서, 특히 환상문학에서 말하는 환상이란, 근대의 이성적 세계관이 탄생한 이후, 이성 바깥으로 추방된 것들을 말했습니다. 자연과학 법칙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 비이성적인 것을 총칭하는 것이었죠.
- 동양의 환상: 현실과 공존하면서도 다른 것. 질서 그 자체의 연장.
- 서양의 환상: 이성 바깥으로 추방된 것. 비문명적, 비과학적인 것, 미신적인 것.
근대 이후 중세적 미신으로 폄하되고 의식의 영역에서 무의식의 영역으로 추방되었던 어두운 정서들이, 이성의 과잉에 반발하며 ‘문학적으로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환상’이란 개념에는 동서양 간에는 세계관의 차이가 있었는데, 한국 환상의 터에 서구 판타지가 수입됩니다. 동화의 환상, 동양의 환상, 서양의 환상문학, 그리고 대중문화 소설 장르로의 ‘장르판타지’ 개념이 혼재되기 시작하지요.
이 글에서 우리가 다룰 개념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장르판타지’라는 대상입니다. 이는 흔히 J. R. R. 톨킨 이후 정립된 개념으로 봅니다. ‘환상’을 소설의 서사나 요소로 국한하지 않고 2차 세계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서사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 세계에 기반을 둔 1차 세계와 가상 질서를 기반으로 한 2차 세계의 구분입니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환상문학일까요, 장르판타지일까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모두들 아시다시피, 코스모스적 세계에서 카오스적 세계로 이행되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환상문학으로 볼 수 있죠.
동시에, 캐럴이 환상의 영역으로 제시하고 있는 ‘혼돈의 지하 공간’이라는 설정은 장르판타지로도 분석하고 비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는『반지의 제왕』역시, ‘중간계’라는 설정 등이 있으므로 경이문학이면서도 동시에 대중문학에서의 장르판타지가 된다고 볼 수 있겠죠.
3. 한국 장르판타지의 변천

한국의 장르판타지는 『반지의 제왕』과 같은 서구 판타지 소설의 영향을 받긴 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도스도전기』나 『슬레이어즈』가 그 예입니다.
이렇게 일본을 통해 들어온 문화가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한 것은 PC통신 소설 『드래곤 라자』가 시작한 직후로 볼 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가상세계 속 연재공간을 통해서 한국형 판타지 소설이 창작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해당 소설에서는 D&D의 설정과 ‘오크’, ‘드래곤’ 등의 요소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이후 창작되는 판타지 소설들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초창기 장르문학 시장은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을 뿐더러, 놀이 문화의 연장처럼 장르를 쓰고, 공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만큼 2차 창작(원본을 바탕으로 패러디하여 창작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게 됩니다. 해외의 작품을 보지 못했던 세대들은 국내의 판타지 소설을 보고 판타지라는 것을 처음 접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해외의 요소들이 아니라 국내 초기 작품의 요소를 바탕으로 팬픽을 창작하고, 이것이 출간되기까지 합니다.
점차 한국에서 출판되는 판타지는 서구 배경의 서구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서, 한국인 주인공으로 변해가지요. 이 시대에는 한국의 한 평범한 고등학생이 우연히 판타지적인 이세계로 건너가게 되어, 그곳에서 살아남거나 심지어 먼치킨적으로 강해지는 이야기들이 많이 생산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벌써 인터넷의 가상공간을 통해 쏟아지는 비슷비슷한 설정의 질 낮은 판타지들을 얕잡아보는 말들까지 생겨났습니다. 이계에 고등학생이 가서 깽판을 친다, 라는 의미에서 ‘이고깽물’이라고 한다거나, 수준 낮은 작품들이 대여점 구조를 기반으로 쏟아진다고 하여 양산형 판타지 소설, 즉 ‘양판소’라고 부른다거나 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그런 비난에도 꿋꿋이 대중들은 소비를 통해, 작가들은 그런 소비를 향해, 한국형 판타지의 형태를 만들어 가며 지금의 웹소설의 시대를 맞이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변화의 계보를 판타지 소설 작가이자 편집자인 이도경은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 1세대 : 수입된 초기 판타지 모델
- 2세대 : 퓨전의 등장
- 3세대 : 게임 판타지 소설의 등장 ~ 달빛조각사
- 4세대 : 웹소설으로의 변화
4. 웹소설 시대
위의 목록에서 조금 특이한 것은 4세대, 웹소설 시대의 판타지입니다. 웹소설에서 판타지는 더 이상 2차 세계를 여행하던 초기 판타지 소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2차 세계 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수의 웹소설의 판타지가 독자나 주인공은 처음엔 분명히 평범한 세계에 속한 인물로 시작합니다만, 초자연적인 상황에 맞서 망설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젠 거의 망설이지조차 않죠. 토도로프의 정의로는 환상도 경이도 기담도 알레고리도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더 확실히 소재 중심이 되었죠. 과거로 돌아가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돈을 벌거나 무력을 얻는 ‘회귀’, 내가 알고 있는 소설이나 게임의 주인공으로 들어가서 작품 속 세계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빙의’,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내 신체능력을 키우고, 성장하는 ‘게임 시스템’ 등의 소재로 분류되는 쪽이 소비자들에게 좀 더 명확한 기준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소재적 작품들을 ‘왜’ 장르판타지라고 부르는 걸까요? 어쩌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작가들이 쉬지 않고 창작하고, 또한 대중들도 쉬지 않고 소비하며 저러한 소설을 판타지로 소비해왔기 때문입니다.
1세대에서 2세대로, 2세대에서 3세대로 옮겨가는 동안 작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그 대중적 결과를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웹소설입니다. 조너선 컬러는 “우리는 장르가 있기 때문에 창작이 가능하고, 장르가 있기 때문에 장르를 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소재 중심의 판타지가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소설 작품은 세계 위주의, 거시적 시각의 판타지 세계를 그릴 수 있었고, 그런 작품들이 수천, 수만 종 나왔기 때문에 다시 미시적 시각의, 소재 위주의 판타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소설은 어떤 방식으로 변해갈까요?